나 자신을 지키는 거리

나는 공범이었다 #5

by 김성수

E 씨와의 대화 이후, 우리 사이에는 작은 연대가 생겼다.


몇몇은 비공식 단톡방에서 B 씨의 험담에 더는 반응하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극적인 방어일 뿐이었다. 간식을 건네지 않거나 대화에서 은근히 배제하는 그 유치하고 애매한 방식의 괴롭힘 앞에서, 공개적으로 맞서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놀랍게도, 우리의 소극적인 저항은 작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B 씨의 소모적인 행동들이 눈에 띄게 줄었고, 우리를 대하는 태도 역시 조심스러워졌다. 아마 다른 동료들도 그녀의 행동 패턴을 간파했으리라. 더는 누구도 그녀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대놓고 그녀를 적대하지 않았음에도, 우리의 조용한 연대가 그녀가 더 이상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 나는 회사를 떠났다. 원인이 전부 B 씨는 아니었지만, 갈등으로 얼룩진 관계에서 벗어나자 얽혀 있던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오래 뒤에 A 씨에게 용기를 내어 식사를 청했다. 늦었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그때… 정말 미안했어요.”

그녀는 담담히 웃었다.

“팀장님 잘못이 아니에요. 서로를 알 시간도 없었고, 저는 마음의 여유도 없었거든요. 게다가 저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는 누구에게도 제 이야기를 못 했어요.”

"저 역시, 개인적인 일로 회사 일에 성실하지 못한 점 사과드려요."

서로의 사과와 용서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날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내려놓았다.



이상하게도 회사를 나온 뒤, 흩어졌던 사람들이 하나둘 다시 이어졌다.

C 씨는 같은 동네에 살아 종종 마주치며 안부를 묻고,

D 씨는 예전 경력을 발판 삼아 더 좋은 곳으로 이직했다.

아직 다니고 있는 E 씨는 부서를 옮겨 B 씨와 거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가끔 안부를 전하며 각자의 길을 응원하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영화 같은 사이다 결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제 삶을 찾아냈고, 조금 늦었지만 건강한 관계를 다시 만들고 있었다.

가끔 B 씨가 떠오른다. 업무 역량이 뛰어났던 사람이 왜 그토록 비틀린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을까. 어쩌면 그녀는, 타인을 깎아내리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장점만으로도 충분히 빛날 수 있었음에도,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안의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인정받고 싶은 그 강한 욕구가, 결국 그녀 자신을 고립시켰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녀를 ‘이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관계에 승패는 없으니까. 다만 값진 경험을 얻었다.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서열을 지키려는 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과 맞서 싸우는 대신, 내 마음을 지킬 거리를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 후로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자로 재지 않는다. 대신, 내 마음이 얼어붙지 않도록 온도를 먼저 살핀다.



적당한 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다음 회차한 줄 예고 : 내가 얻은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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