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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수업

by 고진예

오늘 희재와 종민이의 공개수업이다. 희재와 종민이는 내게 오늘이 참관수업이라고 얘길 해줬다. 며칠 전에 종민이는 식탁에서 책을 읽다가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이번에 학부모 참관 수업 때는 나랑 아빠랑 짝꿍이고 엄마랑 형이랑 짝꿍이니까, 아빠는 내 수업에 오고 엄마는 희재형 수업에 가는 거야. 어때?”

“왜? 엄마도 종민이 수업 보고 싶어.”

“아니, 난 아빠가 왔으면 좋겠어.”

작년 학부모 수업에 갔을 때도 종민이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 껏 나름 멋을 내고 옷도 잘 입고 공개 수업에 찾아갔지만, 아이는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종민이는 내가 가끔 거리에서 춤을 추는 시늉을 하거나 큰 소리로 종민이를 부르거나 장난을 치면 그러지 말라며 나를 말렸다.

“엄마, 엄마는 밖에 나가면 자꾸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시키고 장난을 쳐서 내가 좀 그래.”

“알았어.”

내심 종민이를 즐겁게 해 주고 반갑게 맞아준다는 나의 표현이 종민이가 보기엔 부끄러웠나 보다. 그때부터 나는 종민이와 외출할 때 조심하려고 한다. 그러나 종민이는 안심이 안 됐던지 엄마 대신 아빠가 공개수업에 와주기를 바랐다. 공개수업 전날 밤 종민이는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진지하게 말한다.

“근데, 아빠가 와서 방귀 뀌면 어떻게 하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주방에 있던 나는 종민이의 혼잣말에 웃음이 터졌다.

“종민이가 아빠가 참관수업에 와서 방귀 뀌면 어떻게 하녜요.”“그럴 수 있지. 아빠가 방귀를 뀌고 트림도 할 수 있어.”

“아악, 트림은 좀 아니지.”

종민이와 남편의 대화를 듣자니 웃음이 났다.

“종민아, 그럼 엄마가 아빠 엉덩이에 주머니를 달아놓을게. 방귀 뀌고 냄새가 나면 안 되니까 냄새를 막자.”

“아니 방귀 뀌면 안 되지.”

“희재야, 희재 공개수업에도 아빠가 가실 거야.”

한창 방귀얘기로 소란스러운데 희재는 들은 척도 않고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다음 날 참관수업이다. 희재는 아침밥을 먹으며 나를 바라본다.

“오늘 공개수업이야.”

“그래, 오늘 아빠가 가실 거야.”

올해 초등학교 아이 공개수업은 3, 4교시로 진행되었다. 3교시는 10시 50분이고 4교시는 11시 50분부터 시작이다.

나는 남편과 함께 3교시 종민이의 수업을 보고 4교시 희재수업을 가보기로 했다.

남편은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 희재 유치원 이후로 공개수업을 다녀본 적이 없다. 6년 만에 희재의 공개수업을 가본다.

학교에 가니 젊은 학부모들이 정문으로 들어간다. 엄마로 보이는 젊은 분이 교실로 들어가기 전에 건물 입구에서 덧신을 신고 내부로 들어간다. 2학년 교실은 3층에 있었다.

교실로 들어가니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4인 모둠별로 책상을 붙이고 앉아 수업을 듣고 있다.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의 부모가 왔는지 수업 중간에 슬쩍 곁눈질한다. 작년 종민이 공개수업에는 학부모가 오지 않은 남자아이가 수업시간에 울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들을 응원하러 많은 부모가 시간을 내어 왔다. 아이 두 명은 출석하지 않았다.

“자, 오늘은 칭찬합니다로 공부를 해볼 거예요. “

선생님은 청바지에 청티를 입고 엷게 웨이브를 준 단발을 하고 계셨다. 학부모가 오는 날에는 격식을 갖춰 입어야 했던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수업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고 동적인 선생님의 스타일에 따라 수업분위기도 차이가 났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선생님은 여러 아이에게 발표기회를 주기 위해서 노력하셨다. 종민이는 매 질문마다 손을 들어 올리느라 팔이 아플 것 같았지만, 씩씩하게 매번 손을 들어 말할 기회를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떤 아이는 선생님의 말씀 중에도 왼손으로 만화캐릭터를 제법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린다.


”공부는 못하는데 그림은 제일 잘 그려요. 그 애는 수업시간에도 그림만 그려요. “


언뜻 종민이가 내게 말해주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은 부모가 포스트에 아이를 칭찬하는 문구를 써서 학습종이에 붙여주는 시간이다. 남편은 “종민이는 운동을 잘해요.”라고 썼으며 나는 “종민이는 도로 건설을 잘하고 집을 잘 만들어요.”라고 썼다. 종민이는 자신이 운동을 잘해요.라는 말이 제일 듣기 좋다고 발표하였다.

생기 넘치는 2학년의 공개수업을 마친 후 교실을 이동하였다. 6학년 희재의 교실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영어체험 수업은 외국인 선생님과 한국인 영어 선생님이 번갈아가며 수업내용을 전달하였다. 모둠별로 앉은 아이들은 수업내용을 집중해 듣기보다 친구들 간의 대화가 더 많았다. 희재는 나와 남편을 바라보고 반가운 표정을 짓지 않는다. 공개수업에 참여한 부모도 우리를 포함해 세 부모 정도였다. 아이들은 부모의 참관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영어 수업은 문법이나 대화가 아닌 캐릭터와 지도를 그리고 대화를 연상하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희재는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받아서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지도를 제작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아봐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희재 곁에는 가지 않고 교실에 있는 아이들을 살폈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리기도 하고 옆 짝꿍 얼굴을 그리며 시시덕거리고 뭘 그려야 할지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못 그리는 등 다양한 아이가 있었다. 그중에 아무것도 못 그리고 멀뚱히 앉아 있는 덩치 큰 아이를 보았다.

“얘야, 왜 못 그리고 있니?”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앞에 있는 친구 얼굴을 그려봐.”

“...”

“그게 어려우면 졸라맨 그려도 돼. 졸라맨은 그리기 쉽잖아.”

“그건 너무 성의 없는 것 같아서요.”

“졸라맨을 그리고 졸라맨 머리에 장식을 많이 하면 성의 있어 보일걸. 그럼 개나 고양이 등은 어떠니.”

“...”

아이는 그리기 싫어서가 아니라 많이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으로 심사숙고하는 아이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단체수업은 아이에게 버거울 수 있겠다. 문득 다양한 특성의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단체수업으로 자존감이 떨어질 것이 염려되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장점을 갖고 태어난다. 조금씩 다른 아이들의 장점이 획일화된 교육으로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낙오자로 전락하거나 상처받고 스스로 포기하는 상황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모든 아이들이 각자의 시간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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