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비자발적 전업주부의 우울
26. 실패의 이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누가 그랬냐. 뻥 치지 마라. 실패에는 이자가 붙는다. 실패가 반복되면 이자가 눈덩이만큼 불어나서 몸이 무거워지고, 무거워진 몸은 다시 일어나기를 주저하며 도전 자체를 망설이게 만든다.
면접, 시험, 입사 지원 등.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혀온다.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붙은 실패의 이자가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겠냐며 회유한다. 지친 심신은 늘 그 회유에 못이기는 척 넘어가 버린다.
일상의 행복은 이 이자를 잠시 잊게 해준다. 하지만 결코 탕감해주지는 못한다. 그나마 일말의 노력이라도 시도하려 들면 그래서 이 끝에 과연 희망이 있는 것인지 끝없는 불안함이 엄습한다.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마음도 때로는 무거운 부담이 되어 조급함을 야기하고, 또 때로는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안일한 마음에 기대게 한다.
잠깐의 성취도 이것만으로는 삶의 궤적이 크게 달라질 수 없음을 한탄하며 스스로를 더욱 위축되게 만든다.
세상에 이미 이런 사람들이 많다던데. 그 사실은 이미 지친 마음에게는 위로도, 위기도 되지 못한다. 그냥 그렇구나. 많이들 이러고 사는구나. 내가 대수롭지도 않구나. 또다시 자신을 평가절하한다.
그렇게 주저하고, 망설이고, 불안함에 떨고, 마약 같은 정신승리에 기대며, 자신을 평가절하하는 일련의 과정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결국 나로 하여금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머물게 만든다.
그렇지만 다시 도전한다. 이제 남은 유일한 이유는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정도. 진짜 이 수많은 실패가 성공이라는 결과에 단 한 톨이라도 기여했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품고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킨다.
대학원 입시에 도전한다. 늦은 나이, 분야의 전망 등 세세한 조건은 이제 따지기도 지친다. 그거 따지다가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가장 겁이 난다.
날이 금세 추워졌다. 수능 날만 되면 유난히 추웠던 게 기억이 난다. 새로운 새해를 준비하기 위해 차가운 겨울을 견뎌야만 하는 현실이 참 고약하다. 누가 왜 봄을 계절의 시작으로, 겨울을 끝으로 정했을까. 인생에 비추면 그 반대여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몸에 시동을 걸자. 돌아오는 봄에는 꼭 따뜻하고 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