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당신은 작은 선택과 마주한다. 지각할 위기에 놓인 동료에게 차를 태워줄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의 여유로운 아침을 지킬 것인가. CEO는 회의실에서 고민한다. 적자 부서를 정리해 회사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직원들의 생계를 위해 버틸 것인가. 정치인은 정책 결정 앞에서 망설인다. 소수의 이익을 포기하고 다수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이의 반대 없이 안전하게 갈 것인가.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트롤리 딜레마'와 마주한다. 어쩌면 당신이 어제 내린 작은 결정도,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대사도 모두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통제 불능의 상황 속에서, 완벽하지 않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
이런 고민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철학자 필리파 푸트가 1967년에 제시한 트롤리 딜레마다. 통제 불능 상태의 트롤리가 철로에 묶인 5명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당신은 레버를 당겨 트롤리를 옆 철로로 돌려 1명을 희생시킴으로써 5명을 구할 수 있다. 과연 레버를 당겨야 할까?
전통적으로 이 딜레마는 '행동'과 '비행동' 사이의 도덕적 차이를 논하는 데 사용되어왔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선택인 양 말이다. 하지만 이런 프레이밍 자체가 교묘한 함정이다.
레버를 당기지 않는 것은 단순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외면하는 것과 다름없다. 손을 내밀지 않는 그 순간, 당신은 이미 죽음을 방조하는 적극적인 행위자가 된다. 트롤리가 달려오고 있고 당신 앞에 레버가 있는 그 순간부터, 이미 당신은 선택의 주체다.
따라서 진짜 선택은 이것이다:
레버를 당긴다 = 1명 희생, 5명 구함
레버를 당기지 않는다 = 5명 희생, 1명 구함
이렇게 보면 답은 명확하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논리적 결론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내 손으로 직접 누군가를 죽인다'는 행위의 심리적 무게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회피적 태도야말로 얼마나 무책임하고 겁쟁이 같은 모습인가.
현대 사회를 둘러봐도 이런 비극적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정치인의 망설임으로 인해 수십만 명이 고통받고, 기업가의 무책임으로 인해 수천 명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참사가 반복된다. 명백히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내 손으로 직접 하기 싫다'는 이기적 심리 때문에 미루고 회피한다.
의료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장기 이식이나 의료 자원 배분에서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결국 더 많은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 위험한 제품을 리콜하지 않다가 더 큰 사고가 나고,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회사 전체가 망해 모든 직원이 실직하는 일들이 끝없이 일어난다.
이 모든 비극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손'을 유지하려는 욕구가 실제로는 더 부도덕한 결과를 낳는 역설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직접적인 가해자가 되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그 '깨끗한 손'을 유지하려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회피하고, 더 큰 고통을 외면하는 방관자가 된다. 이는 도덕적 자아를 지키려다 오히려 더 큰 도덕적 죄악을 저지르는 아이러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적인 가해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이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현실은 외면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현실 회피적 태도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완벽한 해답을 찾으려 하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방법'을 고집하다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다치게 만든다.
진정한 도덕성은 결과에 있지, 행위의 형태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 외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문제를 직시하는 용기와 책임을 지는 결단력을 가진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성숙함은 불편한 진실 앞에서 눈을 감지 않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악을 피하기 위한 '덜 나쁜' 선택을 기꺼이 감당하는 용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선택의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딜레마 앞에서 완벽한 해답을 찾으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선택지를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불완전함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와 그 무게를 짊어질 성숙함이다.
이런 사고 훈련이 중요한 이유는, 실제 삶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중요한 순간들에서 더 현명하고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우리 앞에 놓인 크고 작은 레버들 앞에서 말이다.
트롤리 딜레마는 단순한 철학적 퍼즐이 아니다. 진정한 의사결정자가 되기 위한 정신적 근력 훈련이다. 우리가 이 딜레마에서 배워야 할 것은 레버를 당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현실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불완전한 선택지만을 제공한다. 그 속에서 도덕적 완벽함을 추구하며 손을 놓고 있는 것은 결국 더 큰 악을 방조하는 일이다. 진정한 용기는 불완전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나은 선택을 위해 행동하는 데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자신만의 트롤리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진정한 어른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레버를 당겨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질 수 있는 책임의 무게이자,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용감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https://namu.wiki/w/%ED%8A%B8%EB%A1%A4%EB%A6%AC%20%EB%94%9C%EB%A0%88%EB%A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