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학년에게 큐브를 가르치며 깨달은 것
블로그 문의로 인연이 닿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와의 두 번째 수업이었습니다. 큐브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늘 마주하는 고비가 있습니다. 이번 수업은 그 고비의 정석을 보여준 시간이었습니다.
수업 시작 전 부모님께 연습 여부를 여쭤보니 조심스러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연습은 못 했어요. 아이가 다시 되돌리기가..."
아직 모든 과정을 가르쳐준 것은 아니니 아이가 혼자 힘으로 완전히 맞추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내가 건드려서 엉망이 되면 어떡하지?'라는 심리적 장벽이 생각보다 높았던 모양입니다. 숙련자에게 섞는 것은 '시작'이지만, 아이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파괴'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에 큐브를 어떻게 가지고 놀았냐고 물어봤을 때 "그냥 보기만 했어요.", "돌려보기만 했어요."라고 대답한 이유도 그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섞어버리면 다시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지난주에 배운 내용을 복습해 보았습니다. 아이는 제가 가르쳐준 공식 하나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큐브 해법은 기본적으로 다음의 구조를 가집니다.
A라는 목표 상황을 위해
B라는 상황에서
C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A와 B가 머릿속에서 지워진 채 오직 C, 즉 공식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건 단순히 상황을 기억 못 한다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공식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윗면을 돌리는 것과 같은 간단한 조작으로 공식을 적용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른바 '세팅'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아이는 이 과정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B라는 상황을 읽는 것을 넘어, B를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이 아직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단계가 끝났는데도 계속 공식을 써서 공들여 맞춘 부분을 다시 섞어버리곤 합니다. 이건 잊어버린 내용을 복습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더 당혹스러웠던 건, 그 순간 아이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공들여 맞춰놓은 부분이 다시 흐트러져도 아이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현재 상태가 맞는 방향인지 틀린 방향인지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아직 없는 것입니다. 1학년 아이에게 상황 판단과 목표 설정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벽인지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수업 후 부모님으로부터 소중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설명이 다소 빠르다는 점과 소리를 조금 더 크게 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강사로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처음엔 천천히 설명하다가도, 반복 설명을 할 때면 저도 모르게 아이가 어느 정도 이해했을 거라 짐작하고 속도를 높였던 것 같습니다. 숙련자의 당연한 반복이 아이에게는 폭풍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과외 장소가 카페라는 공공장소인 만큼 소리를 무작정 키우는 것에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대신 다음 수업부터는 목소리의 크기보다 아이와의 거리를 좁히고, 시각 자료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밀도 높은 전달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음에는 아예 제가 정리했던 해법서 등의 자료를 펼쳐놓고 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원래 계획은 3회 차 만에 전 과정을 훑는 것이었지만, 오늘 진도는 예정의 70%에서 멈췄습니다. 예정은 6단계 까지였는데 4단계에서 멈췄죠. 지난주 내용을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 입에서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이 나왔을 때, 저는 진도를 더 나가는 대신 브레이크를 밟기로 했습니다.
강제로 진도를 빼서 '가르쳤다'는 만족감을 얻는 것보다, 아이가 큐브라는 장난감에 질려버리지 않게 속도를 늦추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점은, 처음 배울 때보다는 습득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잊은 것 같아도 아이의 손가락은 지난주의 감각을 미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연습 자료로 보내준 영상들이 지금 당장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섞이는 것이 두려워 큐브를 만지지 못했던 아이가, 언젠가 스스로 섞고 다시 되돌리며 즐거워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목표는 여전히 '기록 2분 미만'입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이 아이가 큐브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 성취감을 맛볼 때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가보려 합니다.
같은 아이의 과외 일지가 궁금하시다면
1편 https://brunch.co.kr/@ed0f3be0cbf3447/307
2편(현재) https://brunch.co.kr/@ed0f3be0cbf3447/310
3편 https://brunch.co.kr/@ed0f3be0cbf3447/318
4편 https://brunch.co.kr/@ed0f3be0cbf3447/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