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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지 Mar 23. 2016

18. 서핑의 속도

마지막 서핑

1.

새벽에 했던 내 기도는 먹히지 않았었고

계속 밀려오는 맥주 거품 파도에

나와 동생은 결국 녹다운되고 말았다.


점심을 먹는데

동생은 서핑체험을 하다가

실제로, 정말,

울었다고 고백했다.


파도가 줄지어 자신을 향해 오는 걸 보니

힘든 것을 넘어

눈물이 났고,

울고 나니

'될 대로 돼라!'란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다행히 동생은 서핑에 흥미가 생긴 듯하였다.

바다와 파도를 다르게 즐기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서핑을 다시 경험해 보고 싶다고 했다.

 

물놀이 후에는 뜨거운 국물이 공식. 장칼국수, 손칼국수/ 양양 미가손칼국수 2015년 10월/ 출처: 김은지


2.

점심 먹고 돌아간 서피비치는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사무실, 샤워장, 푸드코트.

크레인은 컨테이너 부스들을

운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풍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시간이

이번 시즌 마지막 서핑이라는 것에

하조대의 모든 풍경을

더욱 서정적으로 보이게 하였다.


철거 전의 서피비치 풍경/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10월/ 출처: 김은비



3.

동생은 쉬고 있고

나는 다시 서핑하기로 했다.


맥주 거품 파도와의 사투로

동생은 모든 에너지가

고갈됐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동생은

다시 서핑하겠다는 나를 대단하다 했다.


나는 벗었던, 젖은 웻수트를 다시 입었다.

몇 번을 더 해봐도

젖은 웻수트를 다시 입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서피비치에는

마지막 서핑을 즐기는

서너 명의 남성 분들이 있었다.

덕분에 마지막 서핑이 쓸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점심 먹었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난 석고대죄 자세로

서핑보드 위에 무릎 꿇고 있었다.

다행히 연습을 마무리할 즈음엔

물 위에서 균형 잡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이미지 사진



4.

나의 2015년 마지막 서핑은

스탠딩 상태를 유지하는 것까지였다.


내년 첫 서핑에선

바다 위에 여유롭게 스탠딩 할 수 있길 바라며

마지막 연습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노을이 짙게 내리기 시작했고

바닷물은 매우 차가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샤워장은 이미 철거됐었지만

대표님의 배려로

철거 전의 캐러반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서핑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철수 준비중인 캐러반들/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10월/ 출처: 김은지



5.

샤워장이 아닌 캐러반에서 샤워를 하면서

기분이 묘했다.


서핑이란 취미가 생겼고,

여름은 10월까지 이어졌으며,

초여름까지 모르던 사람들과 친해졌고,

다음 여름에 할 일이 생겼다.


1년 전, 아니 석 달 전만 하더라도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아쉬운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철거 중의 부산한 분위기 덕분에

귀가를 서두를 수 있었다.


서피비치 대표님, 직원분과 작별 인사를 했다.

서핑 전용 해변을 운영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으시겠지만

내년에도 뵐 수 있길 바랐다.


작별 인사를 나눌 땐 훤한 낮이었는데

인사를 끝내고 나니 굉장히 어두워져 있었다.


어둠이 짙어지는 속도가 빨랐다.

그렇게 2015년의 서핑은 끝났다.



시즌 마지막날의 서피비치/ 하조대 서피비치 2015년 10월/ 출처: 김은지




나가는 말, 2016년 3월 30일(수) 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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