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분이 별로인 병'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지금,
부디 이 고통이 사그라든 상태가 소강상태가 아닌 상승곡선이길 바란다.
지난 토요일부터 몸이 심상치 않았다.
짧은 점심 약속이 있는 일정이었고,
항상 그렇듯 이른 새벽에 일어났는데 그렇게 멍할 수가 없었다.
뇌가 빠져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몸만 존재한 상태로 몇 시간을 누워있었다.
무려 연남동까지 가야 하는데 아무 준비도 할 힘이 없었다. 결국 민낯에, 손질도 안 해 삐친 머리를 손재주로 묶어 그럴듯하게 커버했다.
몸이 침대에 붙어 도저히 일어나 지지 않았고,
겨우 몸을 일으켜 출발했다.
친한 언니를 만나는 거였는데, 처음으로 내가 많이 늦어서 언니를 기다리게 했다.
언니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처럼 즐거웠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한적한 버스에서 책을 읽으며 평화롭게 귀가했다.
상쾌하게 씻고 '이제 좀 쉬어볼까?'하고 눕는 순간,
우울에 집어삼켜진 그 순간부터 내 몸과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눈물이 '나는'것이 아니라 '줄줄 새고' 있었고,
가족들에게 운 티를 내지 않으려 휴지 대신 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는데, 이걸 계속 닦느니 수건에 얼굴을 붙이고 있는 게 나을 판이었다.
눈물 흘리다 탈수가 올 것 같은 기세.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지는 전혀 모르겠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짓누르는 무기력과 그저 이유 없는 절망으로 가득한 감정 상태,
난 무엇인가에 압도당해 있었다. 아마도 우울이겠지
그 순간 뇌가 무슨 생각들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내 몸과 정신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이 와중에 깜짝 시작하게 된 대자연의 신비 주간.
휴직 직후 이후로 가장 심각한 수준의 우울 파도가 찾아왔음을 직감한 나는, 가족들에게
"이번에 생리통이 너무 심하네, 다음 주에 병원에 가보고 요 며칠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겠어."라고 반쯤은 사실이었던 거짓말을 했다.
생리통으로 쓰러진 전적까지 있었기에, 가족들도 조금의 의심 없이 속아 넘어갔다.
그렇게 내 방 안에서는 철저히 나 혼자와 잔혹한 우울과의 기싸움이 이틀간 이어졌다.
왜 이러는지, 갑자기 무엇 때문인지, 짚히는 사건조차도 없어 더욱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마치 수영도 못하는 사람이 심해에 빠져, 나올 수 없는데 원망스럽게도 생명이 계속 붙어있는 상황.
차라리 죽어서 당장 이 고통을 끝내는 게 나을 것 같은 정도의 숨 막히는 고통이 날 집어삼켰고,
시간은 참 더디게 흘러갔다.
이 와중에 빠지면 섭섭한 나의 랜덤 플레이 신체화 증상들은 여기서! 이번엔 저기서! 깜짝 등장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 깜짝!
온몸의 근육 미세하게 떨리기 깜짝!
눈 하나에 다래끼 3개 나기 깜짝!
혓바늘로 온 혀를 뒤덮기 깜짝!
한여름에 오한 깜짝! 그랬다가 식은땀 깜짝!
어지럼증과 숨 막힘, 구역감은 언제나 항상 함께 하는 기본 베이스에
하필 이 타이밍에 하반신이 불타고 골반이 빠져나갈 듯이 아픈 생리통까지!
"어쩜 사람이 이렇게 한 번에 여러 군데가 아플 수 있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체념하는 그 순간.
이번엔 처음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 등장
손 여기저기가 저려 왔다. 그것도 전기가 찌릿찌릿
통하는 느낌으로, 처음 겪는 증상이라 당황스러웠다.
처참했다.
이 지경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게 가능은 한 걸까,
벌써 진단받은 지 10개월인데,
이렇게 한 번씩 심각한 우울증세가 등장할 때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너무 무섭다.
이 영겁의 고통을 잊기 위해, 잠들고 싶은데,
무의식 속으로 도망가고 싶은데,
참는 것에도 분명 한계가 있는데,
혼자의 힘으로 너무나 버거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사실상 아무도 도와줄 수 있는 건 없고,
누구한테 전화라도 할까 망설였지만,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또 씩씩한 척할 게 틀림없었다.
이렇게 불안정한, 분명히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과 마음 상태에선 나도 내가 무슨 말을 뱉어서 그 누구에게 충격과 상처를 줄지도 모르니까.
잠시 사회적 단절을 선택했고,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고통이 지나가는 순간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당연히 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다.
내가 아픈 선택을 한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죄책감을 떠안고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을 수도 있는데!
나도 예민한 기질에 연약한 몸으로 태어나 다양하게 아파봤지만
단연코 우울증의 고통이 최고였기에
내 주변 누구도 이 고통을 평생 몰랐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안 된다.
꼭 살아내야 한다.
살기 위해 있는 대로 영양제를 챙겨 먹고,
비타민 음료를 들이켜고,
바나나를 한 입에 백번씩 씹어 넘겼다.
토해내지 않기 위해서.
그때 '제발 잠들어버리고 싶다.'를 되뇌던 순간,
엄청나게 잔혹한 생각이 뇌리를 그쳤다.
매일 자기 전 수면을 돕기 위해 먹는 신경안정제,
저걸 여러 개 먹으면 당장 잘 수 있겠지?
순간 나 자신의 생각에 너무 깜짝 놀랐다.
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잔혹하게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괴물이 된 것 같았다.
충동을 겨우 겨우 억누르고 하루 치만 복용했지만,
내가 이런 '위험한 생각'을 했다는 자체만으로 처참함이 밀려왔다.
나의 정신과 몸은 정말 내 것이 아니구나.
오늘 새벽 식은땀에 온 몸과 옷이 다 젖는 도한증을 마무리로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킨 우울은 잠시 내 깊은 곳 어딘가로 숨어들었다.
이제 생리통만 남았고 몸만 아파서 너무 좋다.
우울증은 처음에는 기분이 가라앉는 가벼운 정도에서 시작하지만,
가랑비에 몸이 젖듯 서서히 우울에 젖어들면
이렇게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깨어있는 시간 내내 지속되는 우울의 고통,
우리는 사회적 관계를 피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고통을 참아내고 난 뒤에 돌아오는 혼자만의 시간에는 참았던 것들이 한껏 불어나 있다.
불어난 고통을 감내하는 것 역시 나 자신뿐이다.
우울증 환자를 아끼는 지지세력 지인들은 우울증에 걸린 소중한 사람을 몹시 안쓰러워하며,
약 잘 챙겨 먹고 푹 쉬어.
방 안에만 있지 말고 나들이도 좀 하고 그래
부담감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먹어
따뜻한 말들로 감싸주지만
중증 우울증 환자들은 다 알고 있다
웃으며 대답하지만 저 중에 나의 힘으로 실천 가능한 방법은 없다는 걸,
나의 마음과 행동인데도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도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 지지세력들은 힘이 되니 굳이 무슨 말을 애써 해주려 하지 않아도 좋다.
나를 누군가 생각해준다는, 걱정하고 있다는, 지지하고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