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vs 사무라이

4년 간의 치열한 전쟁의 시작

by 성주영


푸른 하늘 나른한 오후


항구에는 해군복을 입은 금발 벽안들이 즐비해있다.


누구는 선베드에 한가로이 누워있고


누구는 비치 발리볼을 한다.


누구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누구는 배의 갑판을 청소한다.


그 평화도 잠시…


저기 저 하늘 위에서 검은 점들이 보인다.


갈매기인가..?


아군 정찰기인가..?


콰쾅!


그제야 보이는 날개 위 붉은 원


사무라이의 전투기였다.


그제야 급히 들어오는 전보


“This is not a drill. Repeat. This is not a drill.”


순식간에 파라다이스는 온데간데없고 지옥이 도래한다.


쾅! 콰쾅! 부아앙! 콰콰쾅!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Medic! We need a god damn medic here!”


“Everyone else, get to the battle stations!”


삐이이이….


항구를 굳건히 지키던 그 위엄있는 배의 격납고에서 사무라이가 떨어트린 폭탄이 터진다.


콰쾅!!


그 배는 두 동강이 난다.


두 차례에 걸친 사무라이의 공격


독수리는 크나 큰 상처를 입는다.


사무라이는 알았을까…?


그의 두 차례 일격이… 4년간의 혈투를 불러올줄….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두 동강이 난 그 배는 여전히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설: 위의 에세이는 태평양 전쟁(1941-1945)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진주만 공습을 다룬 작품입니다. 진주만 공습은 1941년 12월 7일 일요일에 일어난 일본 주도의 공습입니다. 이 공습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주도 하에 계획되었습니다. 공습 당시는 일요일이었기에 진주만에 주둔하던 대부분의 해병들은 휴가 나가있었고 그랬기에 일본의 급작스러운 공습에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2차례에 걸친 공습을 시도해 미 태평양 함대 전력 중 60%를 격파했으나(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USS 애리조나 호였고, 이 전함의 격납고에서 일본이 투하한 폭탄이 터져 반파되어 수몰되었습니다. 이후 이 전함의 잔재는 지금까지도 애리조나 메모리얼로 탈바꿈되어 진주만 공습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미 태평양 함대의 주력 항모 3척을 격파할 수 없었고, 드라이독이나 유류 저장고 역시 파괴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나중에 미국이 빠르게 전력을 회복해 반격에 나서도록 하는 기반이 되어 주었습니다. 실제로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공습 직후 “잠자는 사자를 깨웠다.”며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버틸 수 있는 기한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 직후부터 1942년 6월 4일-7일 미드웨이 해전 직전까지 딱 6개월 동안 연전연승 했으며 이후에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주력 항모 4척을 잃으며 패전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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