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허송세월》
1인칭과 3인칭 사이에 '너'가 있음으로써 인간은 복되다.
1인칭과 3인칭 사이에 '너'가 있음으로써 인간은 복되다. 3인칭을 2인칭 '너'로 변화시켜서 끌어당기는 몸과 마음의 작용을, 쑥스럽지만 '사랑'이라고 말해도 좋다.
'나'를 주어로 문장을 쓸 때는 정직하기가 어렵고, 또 반대로 정직을 내세워 뻔뻔스러워지지 않기가 어렵고, 수다떨지 않기가 어려운데, '그'를 주어로 문장을 쓰자면 '나'로부터 '그'로 건너가기가 어렵다. (중략) 글에서나 사진에서나 1인칭만으로는 세상을 구성할 수가 없다. '나'가 물러서므로 3인칭은 겨우 드러난다.
나는 공적 개방성을 갖춘 글 안에 많은 독자들을 맞아들이려는 소망을 갖지 못한다. 나는 나의 사적 내밀성의 순정으로 개별적 독자와 사귀고, 그 사귐으로 세상의 목줄들이 헐거워지기를 소망한다. 글을 써서 세상에 말을 걸 때 나의 독자는 당신 한 사람뿐이다. 나의 독자는 나의 2인칭(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