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와강 10시간전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김종삼의 시 <어부>


어부 /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 <시문학>(1975)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이 문장만큼 한 사람의 생을 요약한 말이 또 있을까.


누군가 당신에게 시간을 되돌려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하면, 당신은 몇 살 때로 가고 싶은가. 스무살? 서른? 아니 그보다 더 어린시절로 갈 텐가?


조금도 지체없이 바로 답할 거다.

놉! 난 안 간다.

난 지금이 좋다.


내 젊은 날은 치열했다. 무얼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고,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했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서툴러,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내가 떠나야 할 때마다 속으로 울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늘 목구멍에 매달린 채 쉽게 발화되지 못했고, 나 혼자 끙끙 우물쭈물하다 결국 시간도 사람도 놓쳐버렸다.


객기에 취해 낯선 골목을 배회했고, 욕망을 찾아 어설픈 일탈도 더러 했었다. 때론 신념에 목숨을 걸었던 짧은 순간들도 있었고, 그 신념을 등지고 돌아서며 오랜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먹고 살기 위해 밤낮으로 무언가를 했고,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렸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쎈 척하며 사느라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싶다. 처음이니까, 몰랐으니까 겪어냈으리라. 그러니 아무리 억만금을 준다 해도(흐음... 억만금이라면...?)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그 시간들을 견뎌내고 싶지 않다. 내 생에 젊음은 딱 한 번, 귀한 줄 모르고 쿨하게 지나온 걸로 족하다.  


그래도 그렇게 살아남았으니, 살아온 힘이 앞으로 살.아.갈.기.적.을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 살아보면 안다. 오래 살았다고 걱정이나 근심이 없어지진 않는다. 여전히 불안하고 앞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곁눈질로 익힌 사소한 삶의 노하우들이 무용해질 때도 있다.  삶에 닥친 모든 문제는 늘 처음이니까.


그러나 젊은날과 달리 느긋해질 수 있는 이유는 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배처럼 흔들려도, 풍랑에 뒤집혀도 결국 난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다. 풍랑 뒤엔 언제나 새로운 태양이 뜬다는 걸 온몸이 기억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여전히 괜찮은 척, 쎈 척하며 씩씩하게 잘 살아갈 거다. (~척하며 살다보면 언젠간 정말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였을까. 2007년, 오랜 투병생활 끝에 발표한 장영희 씨의 첫번째 수필 제목도 바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었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산다. 그러니 김종삼 시인의 시 속 '어부'처럼 "화사한 날"을 기다리며 그저 오늘을 살아가면 그만이다. 살.아.있.음.이.곧.기.적.이.니.까. ♣  

금요일 연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