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엽서처럼 네게로 갔다. 봉투도 비밀도 없이. 전적으로 열린 채. 오후의 장미처럼 벌어져 여름비가 내렸다. 나는 네 밑에 있다. 네가 쏟은 커피에 젖은 냅킨처럼. 만 개의 파란 전구가 마음에 켜진 듯. 가을이 왔다. 내 영혼은 잠옷 차림을 하고 돌아다닌다. 맨홀 뚜껑 위에 쌓인 눈을 맨발로 밟으며
이 시는 진은영의 시집《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문학과지성사, 2022)에 실렸다. 짧은 시에 담긴 화자의 사랑은 솔직하고 용감하고 강렬하다.
당신을 얼마나 사랑해야 이렇게 숨김도 꾸밈도 없이, 모든 것을 활짝 열어젖힌 채 다가갈 수 있을까. 마음에 만 개의 파란 전구를 켜고, 잠옷차림의 영혼이 맨발로 눈을 밟으며 다가갈 수 있을까. 완벽히 무장해제된 상태로, 오로지 당신만 보고 직진할 수 있을까. 부끄러움도 내숭도 없이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어떻게 이렇게 만천하에 공표할 수 있을까.
사실 사랑은 너무 뜨거워 오래 감춰둘 수가 없다. 사랑하면 단순해지고, 부드러워지고, 착해지고, 때로는 용감해진다. 온몸이 액체로 변해 당신에게로만 흘러간다. 내 삶은, 온 세상은 당신 중심으로 돌아간다. 당신의 눈짓 하나에 난 활화산에서 빙하까지를 수시로 오간다. 당신은 내 기쁨과 슬픔의 근원이다. 당신은 나의 하루 24시간이고, 나의 봄, 나의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인가, 이런 연시(戀詩)를 읽으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내 마음에도 파란 전구가 켜진 듯, 온세상이 환해진다. 사랑시는 시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물들이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