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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24. 2024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어요

만담 해풍소

환자: 안녕하세요.


정신과 선생님: 어서 오세요. 그동안 어떠셨어요?


환자: 제가 요즘 조기 치매인가 싶을 정도로 일상이 불가피해요.


정신과 선생님: 아, 그 조기치매(욱 하시며 흥분하셔서)는 드라마 하나 때문에 온 국민을 망쳐놨어요. '조기치매란? 뭐냐면 아무 스트레스도 없는 상태에서 뇌에 이상으로 기억이 사라지는 게 조기치매고요.'

환자분은 그냥 건망증이에요.


환자: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는데요. 건망증이라기엔 정도가 너무 심각해요. 건망증은 알게 됐을 때 '아, 맞다' 이래야 한댔잖아요. 전 최근기억부터 없고요. 1년 안의 기억 중에도 처음 듣는 일들이 굉장히 많아요. 집도 못 찾을 때도 여러 번 있었고요.


정신과 선생님: 보니깐 환자분이 예민하시고, 감정기복도 매우 심하시고요. 그래서 더 그러신 거 같은데. 걱정 마세요. 건망증이에요.


환자: 선생님 예민하다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저도 제가 어떻게 못하는 거니깐요. 근데 제가 감정기복이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번부터 계속 저한테 예민하다와 감정기복이 심하다고 하실 때마다 참았는데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감정기복이 심하다가 예민하다와의 동의어인가요?' 제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럽니다. 어떤 무리 속에 있어도 저는 중도이고요. 피해를 보면 봤지. 문제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에요. 물론 가정에서도요. 제가 참고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고요. 그다지 살면서 화내일이 아닌 것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있어요. 식당에서 누가 저한테 음식을 쏟아도요. 빨면 되니깐 화내본 적 없고요. 그런데 선생님 습관적으로, 위치적으로 자꾸 저한테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라고 하시면 저는 선생님 차트에 그런 사람이 되는 거 아닌가요?


정신과 선생님: 자 환자분 내 얘기 들어보세요. 친한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도움을 요청해요. 근데 나도 어려워요. 그럼 10의 친구들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어떻게 할거 같으세요. 9명은 미안하지만 못 도와준다고 하고 말아요. 그중에 한 명은 자신도 어려우면서 그 친구를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그게 환자분이라니깐요.


환자: 선생님 그럼 그게 감정 기복이 심해서 도와주는 건가요?


정신과 선생님: 아니, 내 말은 상대방 어려움을 못 넘기는 예민함, 감정의 기복을 말하는 거죠.


환자:  선생님 전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아까의 말씀과 달라지셔서. 선생님 위치가 그러실 거예요. 타성에 젖기 쉬울 거라 생각돼서 그동안 참았어요. 하지만 저는 정신이 약해져 온 환자잖아요.


자칫 의도와 상관없이 가스라이팅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울증 증상 말고는 기복이 없는 사람인데 부러 조증까지 만들어 주시는 거 같아요.


선생님이 잘 못 말씀하시면 물도 독극물인지 알게 되는 사람도 생길 수 있습니다. 관성에 젖은 상담을 자제해 주세요. 적어도 전 아직 논리적 대화가 가능한 상태거든요.


정신과선생님: 이주치 약 드릴게요.

이 주 후에 뵙죠.


환자: 안녕히 계세요.


작가의 말:  이번 글은 저의 이야기를 약간 편집해서 쓴 글인데요. 우리는 타인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인식을 거치지 않는 정보를 습득하고 상처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건 마이크를 쥔 사람의 위치나 권력 내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될 수 있겠죠.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타인이 나를 노랑이라고 말했다고 내가  노랑나비일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은행나무면 그냥 꿋꿋이 태양 아래 연둣빛 은행잎으로 살면  되는 거죠. 노란색은 내가 되고 싶을 때, 가을이 돼서 기쁘게 될 테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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