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모래 :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방게 : 갑자기 웬 사랑?
바닷모래 : 아니, 매일 사람들을 보니 그때마다 다른 기분이 느껴져서.
방게 : 어떤 기분인데?
바닷모래 : 일단 아이가 있는 가족에선 오후에 노을 같은 돌보는 사랑이 느껴지고, 남녀가 오는 사람들은 여름의 태양 같은 뜨거운 기분이 들어.
방게 : 오 관찰 좀 하는데, 난 사람들 오면 숨느라 정신이 없어서 뜨거운지 어떤지도 못 느껴.
바닷모래 : 사람들이 와도 바위에서 노는 방게들도 많던데, 넌 왜 그렇게 숨어?
방게 : 게네들은 머리가 딸려. 인간들이 바위까지 못 갈거라 생각하는 거지. 먹고 노느라 정신 못 차리다 잡히는 거야. 그러다 금방 방게튀김 될지도 모르고.
바닷모래 : 아, 미치겠다 너 왜 이렇게 웃겨. 너희도 머리가 좋고 안 좋고 가 있어?
방게 : 그럼 시장에 가봐. 불쌍한 방게들이 소쿠리로 넘칠걸. 방심한 방게들의 최후는 고통스럽지.
바닷모래 : 너희 삶도 힘들겠다.
방게 :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인간들은 우리에게 해로워.
바닷물 :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아. 물론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환경을 오염시키기도 해. 그래도 바다사막화를 막겠다고 성게를 잡는 일도 하고 산호초를 살려 바다의 순환을 회복시키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어.
방게 : 그럼 뭐 해? 애초에 안 버리고 실수를 안 하면 되지.
바닷모래 : 나는 사랑에 관해 너희들과 얘기하고 싶었는데, 얘기가 자꾸 삼천포로 가네.
바닷물 : 응, 모래야 이것도 사랑과 관련이 있어. 아이들이 까르륵거리면 니 위를 뛰어다니는 순간도 사랑이고, 연인들이 손을 잡고 백사장을 걷는 일도 사랑이야. 노부부가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도 물론 사랑이고 말이야. 사람들이 자연을 회복시키려고 하는 일도 사랑이야.
바닷모래 : 그래?
바닷물 : 응, 사람들을 다 알려고 하지 마. 생각보다 복잡한 생명체야. 나는 물이라 모든 곳을 흘러 사람들을 보고 오잖아.
사람들은 매일 씻어. 자기 몸에 묻은 오염물을 씻으며 그날의 실수와 후회들도 흘려보내.
그러면서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더라.
그것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사랑이고 애착의 방식이더라고.
방게 : 그래서 여자들은 바다에 와서도 그렇게 거울을 보는 거구나. 나를 너무 사랑해서?
바닷물 : 크.. 그렇지. 그게 나를 돌보는 일이기도 하니깐.
바닷모래 : 사람들은 삶도 사랑을 해야 해?
왜? 우린 그냥 살잖아.
바닷물 : 우리는 무한을 반복하니깐 의미가 다르지. 너와 나는 형체가 변해도 삶이라 생각하잖아?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아. 각자의 생명시간을 모르고 살아야 해. 그래서 몸이 사라지면 산 시간도 멈추는 거지. 그러니 삶이 다르게 느껴지겠지.
바닷모래 : 그렇구나. 그럼 매일 두려워서 어떻게 살아?
바닷물 : 그래서 내가 아까 그랬잖아 보다 복잡한 생명체라고.
매일 같은 삶이라 느끼는 사람도 있고, 죽음을 멀리하려 애쓰는 사람도 있어.
이 모든 마음들이 모여 삶을 사랑하려 애쓰며 살더라고. 두려움을 버티려고 용기도 내고. 창피함을 견디려고 애쓰기도 하고.
꼭 상대가 있는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 나를 아끼고 나의 소중함을 아는 것도 사랑이야.
바닷모래 : 그럼 사람들은 왜 사랑할 때도, 헤어져서 힘들 때도 꼭 바다에 오는 거야?
방게 : 나 튀겨 먹으려고 오는 거지.
나쁜 인간들.
바닷물 : 아 배꼽아..
웃기지 마 방게야, 나 정화된 지 얼마 안 됐어.
네가 그렇게 가는 건 안 됐지만, 그것도 자연의 사랑 방식이야.
나도 마셔지고 배출돼서 계속 같은 걸 반복하며 살잖아. 방게 너도 나를 마시지만 나와 바닷모래 속에서야 살 수 있듯이 말이야.
바닷모래 : 내가 먼저 말했잖아. 자꾸 끼어들지 말고 내 말 끝나고 말할래?
방게 : 너희는 언제든 말할 수 있지만 난 또 사람들 오면 숨어야 하니깐 그렇지.
바닷물 : 자자 싸우지 말고.
내가 아는 데까진 다 말해줄게.
사랑할 땐 사랑해서 둘의 사이의 끝이 없을지 알고 오는 거야. 끝이 없는 바다를 같이 보고 추억을 만들고 싶은 거지.
바닷모래 : 그럼 헤어지고 혼자 오는 건?
바닷물 : 끝이 없을 줄 알았는데 끝을 알게 됐을 때 그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서 오는 거지. 보이지 않는 바다 멀리.
바닷모래 : 그렇구나. 그럼 왜 헤어지는 게 슬픈 거야?
바닷물 : 우리는 순환 자체를 생명이라 여기기 때문에 슬프지 않지만 사람들은 끝이라 생각하거든. 그러니 이별이 더 크게 슬프겠지.
방게 : 와 바닷물 넌 모르는 게 없구나. 혹시 네가 신이야?
바닷물 : 아니. 나는 좀 더 많은 형체와 물질의 시간을 돌아왔을 뿐이야. 모든 순환의 모임이 나이기도 하고.
바닷모래 : 사랑은 생각보다 어려운 거구나. 나도 상대도 삶마저도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거니깐.
그것도 나에게 얼마나 있는지 모를 시간 속에서.
바닷물 : 글쎄. 내 생각은 좀 달라. 존재 자체가 사랑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만남과 이별도 슬프고 아픈 일이 아니야.
나는 흐르고 모일 때 힘을 빼거든.
사랑은 힘을 빼야 느낄 수 있어!
아끼고 버티려고 하면 노력하는 힘이 들어가게 돼. 삶이 힘들어져. 힘듦 속에선 순수한 사랑을 느낄 수 없거든.
보단 존재의 의미를 먼저 알았으면 해.
모든 순간이 찰나임을 알게 된다면 시간의 양보단 실체적인 삶의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될 테니깐.
방게 : 그럼 내가 튀겨지는 순간도 사랑하라고?
응?
맞아?
왜 아무도 대답이 없어ㆍ ㆍ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