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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an 13. 2022

숨을 쉬기 위해 간 그곳에서

추위가 불러온 나비효과

시골 땅을 밟고 맑은 공기를 마시자 심장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도시에서는 잘 안 쉬어지던 숨이 공기 좋은 시골에 가니 한결 편안해졌다. 지인을 통해 1주일간 머물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선 한 주간 머물며 대체의학치료가 내게 맞는지를 살피려는 마음으로 간단한 짐만 챙겨서 이동했었다. 


원래 계획은 치료 효과를 살펴본 후에 본가로 다시 돌아가서 준비를 제대로 하고 돌아오려고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동 후에 몸이 따라주지가 않아서 그대로 시골에 갇히게 되었다.  그 때부터 추위와 싸우는 시골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처음 가보는 낯선 지역에서, 도시에서 시골까지 이동하느라 지친 몸을 쉬다가 첫 날 하루가 지나갔다. 그런데 1주일간 집을 비우니 방을 쓰라고 했던 지인 분께서 갑자기 사정이 바뀌어 3일 만에 돌아오게 되었고, 나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컨디션이 바로 본가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였기에 어떻게 해서든 시골에서 머물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던 중, 병원 직원분의 소개로 보증금 없이 단기로 지낼 수 있는 오래된 아파트 집주인을 소개 받게 되었다. 오래 걷는 게 힘들 정도의 컨디션이었기에 나에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처음 머문 곳의 집주인 분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무겁고 숨이 차는 몸으로,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하고 아파트로 향하였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몸으로 어떻게 그 곳에서 지낼 생각을 했는지, 얼마나 도시가 싫었으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의아하지만, 그 때의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시골에 간 후 두 번째로 지냈던 오래된 아파트에서 주위 환경에 적응도 하기 전에 문제가 터졌다. 보일러가 고장 나서 12월의 날씨에 밤새 추위에 떨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추위를 많이 타고 추위에 민감한 몸인데, 한겨울에 썰렁한 아파트에서 벌벌 떨다보니 이러다 몸이 더 망가지겠다는 판단이 섰다. 


도시까지 몇 시간을 걸려서 이동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안 되었고, 도시로 이동한들 도시의 공기를 견디지 못 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골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었다. 마침 그 지역이 고향인 지인의 어머니께서 그곳에 살고 계셨고, 나는 지인에게 연락하여 방을 빨리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그렇게 지인의 어머니와 연결이 되었고, 사정을 들은 지인의 어머니는 흔쾌히 자신의 집에 방이 비니 자신의 집에 와 있으라고 해주셨다. 추위에 벌벌 떨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음날 바로 찾아와주셔서 짐도 같이 옮겨주시고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끔 배려해 주셨다. 


몸 상태 때문에 본가로 돌아가지도 못 하고, 낯선 지역에 와서 바로 방을 구하려니 쉽지 않았는데, 세 번째로 머물 곳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원룸을 계약하려면 우선 부동산을 찾아가 보고 방을 알아봐야 하는데, 당장 병원에 매일 치료받으러 이동하는 것도 힘겨운 상태에서 그것은 내게 고난이도의 과제였다. 그래서 우선 지인 분 어머니 댁에서 신세를 지면서 동네 지리도 익히고 천천히 알아볼 계획이었다.  

    

물론, ‘이러다 지인 어머니와도 불편해지는 일들이 생기고, 지인하고도 사이가 나빠지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을 안 했던 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둘 다 잃거나, 둘 다 얻거나’ 둘 중 하나라고 사리분별을 했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권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음을 선택하였다. 둘 다 잃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지인 어머니께 맞춰드리려 하고 지인 어머니와 지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도록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런데 아파트에서의 추위를 피해 신세를 지게 된 그 곳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또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 설명을 해 보자면 이렇다. 아파트에서 나온 지 며칠 안 돼서 A형 독감에 걸렸었고, 1주일간 근처 병원 신세를 졌었다. 퇴원한 후에는 독감을 앓은 컨디션이 회복이 안 되어서 외출조차 어려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씻는 것조차 큰 애씀이 필요한 기력이었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으면 찬 공기 때문에 기침이 일어나곤 했다.


그렇게 병원 진료도 제대로 가지 못한 채 집안에 머무르는 날들이 많아졌다. 병원까지 가는 길도 제대로 모르고, 눈이 펑펑 내리며 이동이 불편한 날씨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안에서 건강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바쁘신 지인 어머니께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몸의 제한으로 꼼짝도 못 하고 있는 나에게는 시골에서 머물 수 있는 방  한 칸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사했다.     


지인의 어머니께서는 갱년기 증상이 심하셔서 겨울의 강추위를 못 느끼실 정도였고, 보일러를 안 트실 때도 있었다. 집안에서 마스크를 끼고, 담요를 두르고, 겨울옷을 겹겹이 껴입어도, 차가운 공기가 내 몸에 주는 해로움은 막을 수 없었다. 신세를 지고 있는 마당에 내 컨디션에 맞춰주시기를 요구할 수도 없었고, 본가에 있는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이 상황을 말씀드릴 수도 없었고, 그렇게 나는 추위와 싸우고 몸이 더 안 좋아지기 시작했었다.      


이 또한 지금 와서 보면, 미련하기 그지없는 바보 같은 처신이었다. 그런데 그 때는 왜 그렇게 도시에만 가면 숨이 안 쉬어지던지… 몸서리처지고 끔찍할 정도로 도시가 싫었고 시골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다.      


그런 미련한 태도 때문에, 도시에 있는 동안 옛사랑과 연락하며 받은 힘으로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아 끌어올린 몸 상태는 하염없이 나빠졌다. 고작 추위 하나로 그렇게까지 몸이 나빠질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큰 인내심으로 아픈 치료들을 견뎌내고 시골까지 이동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서 왔는데, 내 노력이 얼마인데, 이렇게 추위 하나 때문에 그 노력들이 물거품 되다니 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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