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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an 13. 2022

삶을 재활하기

살아간다는 것도 재활이 필요합니다.

내가 걱정이 되었던 부모님께서는 계속 본가로 돌아오라고 하셨고, 차에 나를 싣고 가시려고 데리러 오셨었다. 나는 도시에 돌아가면 그대로 숨이 멎어 죽을 것만 같다며 끝끝내 시골에 남겠노라고 고집을 피웠다. 일단은 시골에서 최대한 있으면서 교통사고와 관련한 모든 강한 기억들이 옅어지기를 원했고, 교통사고 가해자 및 관련자들과 엮이지 않는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보고 싶었다.  그만큼 교통사고후유증의 증상은 심각하고 괴로웠다.     


「 정신이 너무 힘들다     

분명 살아있고 살고 있는데     

모든 게 꿈같이 느껴진다     

하루라는 시간에 적응해 가는 과정 같은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현실감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내가 무섭다     

2018년 4월 1일이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살 수 있다     

이 모든 건 지나갈 거다」

    

이 기록은 생존을 향한 한 인간의 절박함을 말해준다. 숨을 쉬기 위해 찾아간 마지막 희망 시골에서 나는 이런저런 일들에 엮이면서 정신이 터지는 걸 경험했다. 뇌에서는 기억들이 재생되고 정리되던 시기였고, 매순간 숨을 쉬는 것부터 재활해 나가야 했다. 호흡재활, 일상재활, 대화재활 등..


재활은 고통을 수반한다. 재활은 하루 이틀에 해결되지 않는다. 고통이 두려워 재활에 맞서지 않으면 난 영영 평범함에서 빗겨나 있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에 난, 평범함을 얻기 위한 재활을 지속할 것이다. 부딪히고 정면 돌파하고 깨지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아픈 증상 드러나고 오해받고 비난받고 각종 시선들에 상처받고. 그것들 역시 재활의 일부가 아닌가?!      


아픈 건 죄가 아니고 부끄러운 게 아니다. 아프다고 숨고 이해받지 못 한다고 소통을 포기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케이스라고 일반적인 기준의 평가 앞에 소심해지고 포기하는 게 부끄러운 거다.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모르는 이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자.      


난 당당할 권리가 있고 난 덜 아플 책임이 있고 난 내 몸을 사랑할 의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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