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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DOC Dec 23. 2020

규칙을 정하지 않더라도

여덟번째 요(가어)린이 이야기. 할 땐 하는거다.

귀찮다. 만사가

요가원을 가지 못한 지 한참 되었다. 보는 눈이 없으니 운동도 요가도 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요가 매트에 타월까지 구입했다. 가구도 재배치해서 운동 공간을 만들고, 향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인센스 스틱도 샀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는데 일주일에 한, 두어번 꼴로, 그것도 회당 1시간을 못채운 건 그냥 귀찮아서였다.

귀찮기도 했고, 운동에 시간을 쓰는게 아깝기도 했고. 

운동은 짬 날때 하는 게 아니다.

나름 오래 운동을 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운동은 시간 남을 때 하는게 아니고, 시간을 내서 하는거라고. 또 선배들이 말한다. 살려고 운동한다고. 이 말에 지적으론 동의하지만 와닿지 않았다. 이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진리의 지혜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관성이 더 강하다. 여하튼 운동을 놓은 지 꽤 됐다. 몸은 안움직이면서 먹는 건 늘어났으니 살이 찌는건 당연했다. 어느새 뱃살이 늘고 가슴에 나오더라. 그래.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운동도 다시 해야지. 꾸준히 해봐야지.



비워짐

   결심은 했어도 실천에 옮기기까진 쉽지 않다. 누군가 그랬다. 운동 시간의 80%는 운동을 하도록 설득하는 데 사용된다고. 또 몇 날 며칠을 미루다가 어느 날 저녁 바닥을 쓸고, 닦고, 정리하고,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계기는 당시 내 생활이 마음에 안들어서였다. 이도저도 아니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결국 스스로에게 염증이 났다. 뭐든 새로운 걸 시도해야했다. 자극적인 소리가 없었으면 좋겠다. 자극적인 빛도 없었으면 좋겠다. 조용하고 고요하게 운동을 시작했다. 매트를 깔고 불을 껐다. 스탑워치로 운동 시간을 측정했다. 대략 40분이 걸렸다. 한 루틴을 끝내는데 40분. 할만하다고 느꼈다.

고양된 의식의 순간

   이 후 종종 새벽에 깨는 날에는 적당히 몸을 풀고 요가를 했다. 새벽 요가는 잔잔한 맛이 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경험은 고요하고 적막한 공간을 채우는 나의 몸짓을 온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아쉬탕가 요가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 발과 팔을 쭉 뻗었을 때 원을 그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야한다. 있어도 못하는 건 아니지만 불편하다.


   손을 뻗고 내리는 동작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같은 동작인데, 공기를 가르고 공간에 그리는 궤적이 주는 느낌이 새로웠다. 적막하게 침잠되어 공간을 채우는 어둠 속에서 그리는 손짓이 아름다웠다. 무용과 춤에는 조예가 아예 없다. 그런데도 보기 좋았다. 이런 움직임을 볼 수 있음이 만족스러웠고, 그것이 나한테서 비롯되었음은 더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계속 요가를 찾게된다. 왜 아쉬탕가 수련자들에게 마이솔 클래스가 주로 제공되는지 알 것 같다. 빛과 소리로 가득 찼던 일상에 적막과 어둠이 채워진 시간은 신선했다. 비워진 자극 만큼이나 감각이 예민해졌다.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비워진 공간에 어두움과 빛이 채워져있다. 빛이 희미하면 짙은 어둠이, 어둠이 희미할 땐 강한 빛이 거기에 있다. 공간 안에 채워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비워짐도 있음을 보는 것은 전혀 새로운 시각이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수레바퀴의 지혜를 찍어 맛 본 순간이겠거니,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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