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전격적인 평양 방문을 계기로 남북 간엔 공식 채널이 열리고, 우리 NGO 단체들도 북한과 활발한 왕래를 시작했습니다. 방송 부문에서도 남북협력 제작 지원이 시작되었고 저희도 이 기획 안에 채택되어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기획의도는 체제와 이념을 떠나 민족의 하나 됨을 위해 인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NGO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역학관계는 때론 화해무드로 순항하다가도 느닷없이 긴장과 대치 상태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쉽지 않은 파고를 넘어 6.15 남북 공동선언, 북한 관광, 이산가족상봉, 남과 북을 잇는 철로 연결, 육로 개통 등의 진전을 보이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NGO의 숨은 역할이 있었기에 그만큼의 진전을 보인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1995년 대홍수의 피해를 입고서 국제사회에 공식적인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우리의 NGO는 이때부터 남과 북을 잇는 평화의 가교를 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한 신뢰를 기반으로 2000년에 역사적인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이 이어진 것이죠.
아무튼 저는 북한을 돕고 있는 여러 단체들을 방문해서 제작방향을 얘기하고 촬영협조를 구했습니다. 단체들은 취지는 환영했지만, 대북지원과 모니터링을 위한 방북 일정 등은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서 계획대로 진행하는 게 어렵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더구나 취재를 위해서는 북한과 남한 양측에서 방북 승인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도 서류 심사가 까다로웠습니다. 서류를 받는다 해도 북측에서는 촬영하는 것에 민감해서 많은 제제가 뒤따른다고 했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난관이 많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일단 여러 NGO를 컨택해서 연내에 사업 진행이 두드러진 단체를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땅을 밟아 본다는 기대와 설렘이 있었습니다.
이미 금강산 지역은 다녀왔지만 이번엔 북한의 중심지인 평양이라는 데 그 의미가 달랐습니다. 북한을 방문하기 전인 2001년과 2002년에, 중국의 단둥을 거쳐 압록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코 앞에 보이는 북한 땅을 바라본 적이 있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황폐해진 산과 들에는 중국과는 달리 벌거벗은 민둥산이 누렇게 반사되었습니다. 강변에서 빨래하는 동포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기도 했었습니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강폭이 좁아지고 손에 잡힐 듯한 북녘은 내 어릴 적 선친의 고향에서 보았던 시골 풍경과 흡사했습니다.
압록강변의 북한 마을과 사람들 by pixabay
그렇게 광개토대왕비를 보았고 고구려의 장군총을 만났으며 연변을 거쳐 용정의 일송정에서는 강인한 한민족의 독립의지와 만났습니다. 중국을 통해 올랐던 백두산에서 천지를 바라보노라니 북측에서 오르는 백두산이 궁금해졌습니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터를 거쳐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이 맞닿은 곳으로 향했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고구려와 고려, 조선의 유적을 만났고, 일제와 항거하며 한반도의 독립을 위해 애쓴 선조들의 숭고한 얼 앞에 엄숙해지는 발걸음이었습니다.
두만강을 바라보며 중국의 국경을 넘고 러시아로 들어서면서는 아시아의 문화에서 서구의 문화로 바뀌는 묘한 변화를 느꼈습니다. 우수리스크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면서도 고려인 마을과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만나니 한반도를 둘러싼 근현대사의 역동기가 아픔처럼 슬픔처럼 숭고함으로 밀려왔습니다.
그때 중국과 러시아에서 북한 사람들을 돕는 한국사람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드넓은 땅에 감자를 심고 가꾸어서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동포를 지원하고 있는 기독교 단체를 만났습니다. 외화벌이로 나와 있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복음도 전하고 물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단체였습니다. 중국 연변 쪽에서는 북한 노동자나 먹을 것을 구하러 나온 주민들에게 숙식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단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신앙을 기반으로 하거나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과 외국 국적의 세계시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한반도의 남북 정세와 체제와는 상관없이 평화와 인류애를 기반으로 오래전부터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기에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때 그 단체와 개인들의 인도주의적 사랑에 감동되어서 꼭 저런 사람들을 다뤄 보고 싶었고, 독일에게도 주워졌던 평화와 통일이 한반도에도 임하기를 바랐습니다.
한반도를 벗어나서는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남과 북의 사람들을 보면서 일제의 식민 침략과 이념의 분단이 가져온 분리를 넘어 한반도를 관통하는 정신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북한과 접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 너머에서 한반도와 북한을 바라보기만 하다, 마침내 북한 땅으로 들어갈 기회를 얻었으니 나름 많은 준비와 연구가 선행되었던 것입니다.
북한 식량지원 감자농장 (블라디보스토크 부근)
결론적으로 2006년엔 “변치 않는 약속”이라는 타이틀로 6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었고,
2007년에는 “휴전선 너머 희망을 심는 사람들” 1부: 사랑의 왕진가방 압록강을 건너다, 2부: 한 알의 약, 한 그루 소나무에 담긴 사랑을 완성했습니다. 2008년엔 “평양의대 개안수술 5일간의 기록”을 제작 방송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위원회의 지원으로 제작되었기에 지상파 MBC에서도 방송하고, CTS에도 프로그램을 제공해서 송출했습니다.
2006년엔 북한과의 조심스러운 만남과 도움의 시작이었고 해를 넘기면서는 그 구체적인 결과와 열매를 담았습니다. 물론, 유진벨 재단 같은 경우는 원체 북한에서도 낙후된 지역을 다니며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라 북은 남한의 취재진이 동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촬영을 담당했던 중년의 미국인에게 (주한 외국인학교 여선생님) 6미리 캠코더 촬영법을 가르쳐서 보냈습니다.
이렇듯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무쌍한 긴장 속에서도 평화의 안전판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는 NGO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우리 제작팀에게는 북경을 거쳐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으로 입성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g38UJFrNX0&t=24s 1부: 사랑의 왕진가방 압록강을 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