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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Oct 21. 2023

10월의 날씨가 끝내준다. 한강 산책 가자!

프리랜서의 1인용 자유

이 얼마 만에 미세먼지가 전혀 없는 날인가! 마스크 없이 숨 쉬며 걸을 수 있는 아주 귀한 날씨다. 언제 또 이런 날이 올지 모르니 왔을 때 누려야 한다. 오늘 같은 날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한강 가기! 


저녁 6시 55분, 집밥을 든든히 먹고 한강으로 나선다. 한강에 가는 길에 지하철역을 지난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한가득 길에 쏟아진다. 지하철 출구에서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나오는 사람들과 나는 반대로 걷는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엇갈려 스쳐 지난다. 그들은 집으로, 나는 집에서 한강으로 제 갈 길을 간다. 내가 이상한 삶을 살고 있는 거 아닐까 조바심이 날법도 하긴 무슨, 여유롭고 좋기만 하다. 모두의 시간대를 비껴 사는 하루는 특별하고 재밌다. 혼자 일하는 사람의 특권은 누군가의 승인 없이 내가 원할 때 출퇴근하고 휴식을 가지는 것이다. 


한강에서 한 시간 동안 멍 때리며 앉아 있었다. 가만히 저녁 노을을 보는데 얼굴의 모든 힘이 다 풀렸다. 매 순간 긴장하고 힘주던 미간과 입꼬리의 힘이 완전히 풀렸다. 완전히, 모조리 싹 다, 힘이 빠졌다. 이런 느낌 얼마 만이지? 아니, 이런 느낌을 애초에 가졌었나?


힘이 싹 다 빠지니 그 안으로 신선한 새 공기가 더 잘 들어갔다. 힘을 빼야 새로운 힘이 채워진다. 힘을 내려면 힘을 빼는 법부터 알아야 하는 거구나. 공기는 맑고 화창하지, 분홍빛 하늘과 한강 물결은 잔잔히 흐르지, 온몸의 긴장은 빠졌지, 그대로 벤치에 누워 한숨 자고 싶었다. 한강 벤치에 신발 벗고 드러누워 낮잠 자는 아재들처럼 말이다. 


잠이 온다는 건 내가 그만큼 편안하다는 뜻이다. 대학교 채플 시간에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강의 중에 대놓고 자는 학생은 높은 자존감과 더불어 아무 곳에서 잘 자는 편안함을 가진 거라고. 강의 중에 졸 순 있어도 대놓고 자는 건 어렵다. 채플 시간에 자는 학생을 나무라지 않고 칭찬부터 하신 교수님도 멋지다.


남들과 같은 시간대에 다른 모습으로 살아도 큰일이 나기는커녕 또 다른 재미로 가득하다는 걸 혼자 일하기 전에는 몰랐다. 하루 8시간 꼭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어야만 일을 잘하는 게 아님을 혼자 일하고서야 알았다. 영감은 모니터 속에서 뿅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머리가 지끈 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한다. 몸을 움직이면 뇌가 진정되면서 막혔던 생각의 회로 하나가 열린다. 그래서 난 하루에 세 번 이상 산책을 꼭 한다. 아침, 점심, 저녁 산책은 기본이다. 땅을 두 발로 맞대고 걸으며 오늘의 날씨와 바람을 느낀다.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산책을 통해 계절을 누린다. 제법 찬 바람이 불어온다. 가을 햇볕이 눈부시다. 시간은 찰나라 기회는 지금뿐이다. 

자유롭게 시간을 쓰는 프리랜서는 평일에 누릴 수 있는 게 많다. 평일 아침 조조 영화도 프리랜서의 특권이다. 텅 빈 영화관을 독차지한 하루의 시작한다. 언젠가는 내 객석의 앞, 뒤 줄이 모두 빈 적도 있다. 단독 영화관 수준이었다. 주말이면 사람이 가득한 카페에 평일 낮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하지만 이 자유는 나 혼자만의 것이기도 하다. 친구들은 모두 직장에 있기 때문에 나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산책을 하고, 혼자 커피를 마신다. 나는 워낙 혼자 잘 논다. 하지만 점점 흥미를 잃었다. 친구와 함께라면 하하호호 떠들고, 더 많은 메뉴를 시켜 먹을 텐데.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근교로 여행을 떠날 수 있고 말이다. 혼자이기에 자유롭고 혼자이기에 심심하다. 프리랜서의 자유는 1인용짜리 자유이다.


혼자 밥 먹는 게 점점 귀찮아져 끼니를 때우기로 그치는 매일이 늘었다. 하루는 점심을 잘 챙겨 먹어야 겠다 싶어 식당에 갔다. 12시, 식당에는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한다. 혼자 밥을 먹는 나는 그들을 부럽다. 누군가는 지긋지긋한 직장 생활, 남들과 같이 먹기 싫다고 하겠지만, 나는 당신들이 부럽다. 혼자 즐길 만큼 다 즐겼나 보다. 혼자가 무료하다. 혼자 일하든, 직장이든 모두 다 장단점이 있다. 완벽한 조건이란 없다. 다만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기쁨을 찾아 누리며 사는 거다. 


요새 계속 일이 없다. 오늘도 일이 없다. 10월의 날씨가 끝내준다. 한강이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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