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상아 Apr 01. 2024

13. 가시가 나다.

마음을 달래는 나쁜 상상

이기적인 아빠 아래 지켜주고 싶은 엄마, 그 아래 괴롭히는 언니, 그 밑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땅땅한 바닥에 발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니 아빠로부터 시작된 분노와 상처로 무장한 감정들이 나에게로 흘렀으며 그것을 버릴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찌꺼기들이 썩으며 악취를 풍겨도 나는 안아야 했다. 그것은 자의가 아니라 완벽한 타의였다.


그래서 나는 그 마음들을 내 손으로 정화하려고 노력했다. 미운 감정, 훼손된 영혼, 너덜거리는 마음들을 달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힘 없는 아동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유일하게 상상하는 것. 그것만이 나의 화를 조금이라도 해소시켰다.


행복한 장면을 떠올리며 내가 처한 상황을 외면하는 법이 어린 나에게나 지금의 나에게나 더 좋았겠지만 심한 욕과 조롱을 듣고 몸에 서서히 멍이 드는 것을 바라보며 분노와 모멸에 찬 그 순간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부정적인 상상의 구렁은 어린 아이의 뇌 속에 가시를 심었다. 여린 속살이라 가시는 더 잘 자랐다.





이전 12화 12. 말문이 막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