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은형과 이별한 뒤 이렇게 이상하게 지낼 줄 몰랐다. 타이머를 재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분만 우는데 더 슬프지도, 덜 슬프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여전히 타이머는 내 곁에 있지만 쓸 일이 줄었다. 그리고 내게서 은형도 멀어져 갔다. 이별한 지 반년. 지금은 내가 이렇게 있는 중이다.
*
은형과 헤어진 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몇 달간 궁상맞게 울기만 할 줄 알았는데 울음은 꽤 참을 만했다.
어제 눈물을 참으니 오늘도 내도록 참게 되고 내일은 미지순데 아마 또 참지 않을까 싶었다. 유행 지난 드라마를 한참 지나 정주행했는데 남들이 털고 일어난 결말에 뒤늦게 갇힌 느낌이 들었다.
참으면 안 되는 거였다. 헛헛함에 뒤늦게 갇힐지 모를 일이니.
은형은 내 첫 남자친구였고 그와 나는 4년을 함께 했다. 그래, 참을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괜찮을 수는 없었다.
"야, 나 어떡해?"
"뭘 어떻게 잊어야지. 끝났잖아."
술이란 술은 다 끊고 살던 나는 홧김에 500ml 맥주를 한 캔 사서 친구 연아와 나눠 먹었다.
"은형일 어떻게 잊냐고?"
"그걸 알면 나도 술 처먹고 x한테 전화 안 했지.ㅋㅋ"
맞다. 연아도 얼마 전에 헤어졌었다. 그 탓에 그는 일주일간 술과 가까이 지냈었고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게 일이었다. 그리고 미쳐서 x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결국 술에서 깰 때쯤이 되어서야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반성했다.
"지나갈 기분인 거 아는데, 지금 너무 힘든 게 싫다. 연아야."
연아는 오른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찬찬히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하였다.
"울 시간이라도 만들어 봐. 타이머라도 재면서."
나는 그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누가 눈물을 시간재고 흘리나. 역시 내 친구답다. 독특하다.
집에 오니 책상 위에 타이머가 있었다. 퇴근할 때 깜빡하고 타이머를 들고 온 것이다.
'울 시간이라도 만들어 봐. 타이머라도 재면서.'
연아의 목소리가 스쳐갔다. 속는 셈 치고 5분을 설정했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이별은 늘 지푸라기처럼 가볍고 힘이 없는 것 마저 잡고 당기게 만든다. 혹시나 하고 말이다.
-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6초 더 울어서 완벽한 5분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54초를 절제해 내 울음이 6분에 미치진 못하게 했다. 아픈 사람들은 약을 먹을 때 먹지 않아도 아프지 않게 될 자신을 기대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이 타이머를 너무 오래 쥐고 있을 일이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