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당신과 함께

소리를 낸다는 의미

by 쓴쓴

어제와 같은 카페에 들어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기시감이다. 맥락이 같으니 그려지는 심상도 비슷하다. 어제처럼 충전이 더디다. 두 칸만 빛나는 휴대용 충전기를 멍하니 쳐다만 본다. 네 시간까지는 재밌었다. 총 여섯 권을 가져왔는데 네 번째 책에서 조금 버겁더니 두 권을 남겨두고 마라톤에서 탈락할 조짐이 보인다.

언제쯤 충전되는 거냐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난데 요즘 겪는 상황은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오는 상태다. 춘곤증이나 식곤증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비슷하긴 하다. 문제는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해결이 안 된다는 점인데 수면의 질이 바닥을 친다. 자고 일어났는데 노곤한 게 내가 잔 건지, 잠이 나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미시감이다. 다시 잘 수 있다.


때문에 증상을 조금 겪어 본 이들은 웬만하면 안 자려고 노력한다. 그것도 가능한 조건이 맞춰져야 한다. 날이 어둡고 마음도 지친 날이면, 발바닥이 직립의 중력을 느끼기도 전에 몸이 침대행을 주문한다. 뇌는 미칠 노릇이다.




이겨내려면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최대한 불편하고 높은, 딱딱한 의자에 앉아 허리를 편다. 가장 큰 크기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벌컥벌컥 들이켠다. 좀 나아지려나.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해본다. 다들 바쁘다. 상반기, 봄, 4월, 각자의 이유로 모두 바쁘다. 몇 번 주고받는 문자가 소식의 끝이다. 전화가 되는 친구는 근처에 없다. 그러니 전화를 걸어본다. 소리를 내야겠다. 얼음을 씹는 일은 이제 지쳤다. 뭔가를 씹으면 잠이 안 온다는데, 수면욕이 무료함까지 데려왔다. 너도 친구를 데려왔으니 나도 데려오련다.


신나게 친구와 수다를 떤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어 바쁘다는 친구의 목소리에 반갑게 내가 돕겠다고 말한다. 그리 흔쾌히 응답한 적도 없다. 나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내가 아는 정보를 열심히 알려준다. 마침 어제 읽었던 잡지에서 관련 기사를 보았다.




소리를 낸다는 의미는 잠자는 즐거움과 맞먹는다. 잠자기 싫다면서, 즐거움이라니. 놀라셨는가? 속은 것 같다면 미안하지만 그래서 피하려 한다. 잠은 계속 자도 꿀맛이다. 중독성이 너무 심하다. 그런데 잠을 이렇게 자면 사람이 자괴감에 빠진다. 그런데도 미치도록 자고 싶다. 우울한 현재를 벗어나게 해주는 직통버스인데 마다할 이유가 있는가. 악몽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재밌는 꿈을 꾸면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이 날아갈 기분이 든다.


그런 맥락에서 대화를 한다는 것은 현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잠과 비슷하다. 다른 세계로 나를 순식간에 데려다준다. 잠이 직통버스라면 대화는 비행기쯤이랄까. 좀 멀리 가느라 느리면 어떤가. 멀리 가면 갈수록 더 멋진 곳이 나타날 거라는 기대감으로 수다는 끊이질 않는다.




울리는 성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두뇌회전 속도, 무언가에 집중하면서 깨어나는 의식, 마음이 회복된다. 그렇게 타자가 중요하다. 우울이 반복되는 이에게는.


별로 사람이 필요 없다 느꼈다. 혼자 살아도 충분히 알차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게 증상인지도 모른 채 왜 그리 당당했을까. 조금 내성적인 줄만 알았지 사람을 만나는 게 귀찮아지고 무서워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니 주변에 조금 우울한 사람이 있으면 피하지 말아줘라. 그에게는 대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무서워질 때까지 두지 말고 손을 먼저 내밀어 줘라. 지겨운 마라톤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부축해 줘라. 우울이 묻어 나올까 봐 두려워하는 것만큼 그도 우울이 두렵다. 우울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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