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탓

나쁘지만은 않은 방법

by 쓴쓴

뭐가 이리도 불안할까. 누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명명했을까. 책을 펼쳐선 한 쪽을 채 넘기질 못하고 마음에 이는 둥둥거림도 멈추질 못한다. 읽어야 할 것과 걸어가야 할 것과 마주 앉아 보아야 할 것과 그려보아야 할 것은 산더미인데 그 산과 같은 그림자 안에 난 갇혀있다.


나의 그림자는 내 밖에 있지만 산의 그림자는 내 안에 있다. 우울이 나를 가두고 나는 우울을 가두려 한다. 나만 번번이 실패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심리학자들의 책을 읽으면서도 답을 찾기 어려우니, 나는 좋은 상담자가 되기도 글렀다 느낀다. 그래서 지인의 말대로 가을 탓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을 녀석이 제 때 찾아와 줘서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늦거나 일렀더라면 마음에 이는 지금의 둥둥거림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다. 무엇 하나 잘하지 못하는 것 같을 때는 가을 탓을 해보자.


산의 그림자가 내 안에 길게 있다. 가을이 준 바가지로 조금씩 그 어둠을 퍼내 본다. 그렇게 이것은 잠시의 수고로움 뿐일 거라고 암시한다. 해가 다시 길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데 단풍이 피면 또 단풍 때문이라고 만사 제쳐놓고 정신도 놓고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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