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으로 시작

별 거 없는 순간에 다가오는 질문들

by 쓴쓴

1.


멍.


멍하니 또 벽을 쳐다보았다. 면벽 수련도 아닌 것인데 펼쳐 놓은 종이 쪼가리를 제쳐두고 어느새 눈 안에 가득 찬 무한한 흰 것만 응시하고 있다.


왜 어려운 걸까, 산다는 건. 별 거 없을 줄 알았던 철없는 시절이 있긴 했었나 생각한다. 그러다 재차 멍. 난 왜 널 보냈을까. 넌 내 어느 부분이 좋았던 걸까.



2.


바보처럼 웃었다. 가끔은 내가 미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어이없는 부분에서 한참을 웃다가 그런 내가 참 딱할 정도로 어이가 없다.


세수하려 들어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았다. 피 하고 미소를 지어보다가 뭔가 변한듯한 얼굴에 입꼬리가 내려온다. 그걸 잡으려 다시 애써 웃는다. 과했는지 턱이 툭 튀어나와서 괴물처럼 보인다.


아차, 그만 입술이 터졌다.



3.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믿고 있다. 존재한다면 존재할만한 마땅한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그럼 난 무엇일까. 나에겐 무엇이 근거일까.


기도한다. 잘 안 되지만 기도를 해본다. 몇 개 중얼거리다 그만둔다.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할 말이 별로 없어서가 아니라, 할 말이 많은데 왠지 '말'로는 안 담기는 듯해서다.


그래서 한 마디만 한다. '제발 살려주세요'



4.


허한 날들이 하루 이틀 지난다. 삶이 비어있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비어 있는 곳에 간혹 분노가 불을 지피듯 올라온다. 불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그 순간처럼 맵고 아프다.


이 고통이 반갑다. 너라도 찾아와서 내 마음을 채워주느냐 하고.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그 순간마다 거울을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못난이 거울에 비췬 나를 본다.



5.


인간은 무엇으로 살까 싶다. 사랑. 희망. 정의. 믿음. 다 필요한 걸까. 하나만 있어도 될까. 그렇다면 돈인가. 돈으로 정말 모든 걸 살 수 있나.


돈으로는 외로움을 못 산다. 돈으로는 외로움을 채울 것을 못 산다. 사람인 나는 매 번 외롭다. 그러니 돈으로는 사람이라는 '정체'를 못 산다.


그럼 사랑, 희망, 정의, 믿음은? 다른 건 몰라도 저것들로 외로워지고 외로움을 조금 메운다. 그럼 난 저것들로 사람이 되는 건가.



6.


하나로만은 못 살듯 싶다. 이 욕심 많은 몸은. 벽에서 눈을 거두어 더 이상 허하지 않기로 한다. 물컵을 꺼내어 물을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7.


차갑다.


입술 바깥쪽으로 흘러나온 물이 어느새 가슴팍에 떨어졌다. 아 역시 소용없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떨어져 가는 물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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