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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22. 2022

신윤복 <유곽쟁웅>,
얀 스테인 <와인은 조롱거리다.>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 시대의 거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곳엔 글의 일부만 남기고 많은 부분을 삭제합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모든 사물에 장단점, 호불호, 이러한 양면성이 있는 것처럼 술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누룩이 있기 이전부터 과육이 자연 발효하여 알콜화 된 술이 있었고, 농경시대에 곡물로 누룩을 만들며 술은 점점 더 발전하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이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이라고 말한다. 술의 오랜 역사로 보면 예수가 만든 포도주는 최근(?)의 일이다. 성경에는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셨다(창세기 9:20∼21)”는 구절이 있다. 예수의 포도주 기적 이전의 일이다.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내용의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에도 술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이 대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드는데 그 때 일꾼들에게 맥주와 포도주를 먹였다는 것이다. 길가메시의 시대는 대략2900 – 2350 BC으로 추정한다. 

몇 년 전에는 14000년 전의 양조장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스라엘 북서부 하이파지역에 있는 라케펫 동굴(Raqefet cave)에서 고대 나투피안Natufian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양조장 흔적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투피안은 14500년전의 고대인들이다.  1


우리나라 술의 역사 기록을 살펴본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儛天’ 등의 집단행사에서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술은 제례 혼례 향음례 등 행례行禮의 풍속에서 중요시 되었다. 고서에 기록된 술의 역할은 긍정적이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노인을 봉양하고 제사를 받드는 데 술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한다.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1795)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는 술은 기혈을 순환시키고 정을 펴며 예를 행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라 기록했다. 『사시찬요초 四時纂要抄』(1590), 『음식지미방』(1680), 『증보산림경제』(1766)에는 누룩 만드는 방법과 술 빚는 방법이 집대성되어 있다. 사람은 술을 빚었고 술은 사람을 통해 새로운 예술 창작품을 빚어냈다. 음주와 더불어 지어낸 시가와 음주 장면을 옮긴 그림들을 살펴본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철鄭澈(1536-1594)의 가사집 『송강가사 松江歌辭』에 기록된 〈장진주사將進酒辭〉는 술맛을 돋우는 권주가이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세어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 이어 매여 가나 유소보장의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日), 흰 달(月), 가는 비(細雨),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어찌 하리. 2

‘진주進酒’는 술을 권한다는 뜻인데 정철 이전에 당나라의 이백李白(701-762)이 쓴 <장진주將進酒>도 있다. 이백의 호는 태백인데 그를 일컬을 때 “주태백”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술에 관한 많은 시를 썼고, 술과 달과 이백이 함께 한 화폭에 들어있는 그림도 많다.정철의 〈장진주사〉에서는 인생의 회환이 느껴진다. 그러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의 술에 대한 시는 아름다운 풍광의 정취가 듬뿍 묻어있다.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바라보니/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리하랴/말사감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 하노라.” <고산유고 孤山遺稿>권6, '만흥(漫興)'의 셋째 수. 3

고려에서도 술에 대한 시는 많았다. ‘술’하면 생각나는 고려의 시인은 이규보李奎報(1169-1241)이다. 이규보는 술 없이는 시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 

“병아 병아 너에게 말 두되 술을 담게 된다. 기울이고는 다시 담아 두니 취하지 아니한 때는 없다. 나의 몸을 윤택하게 하고 나의 뜻을 시원하게 한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모두 네가 시킨 것이다. 너를 따라다니는 자는 나이니 다만 술이 바닥이 나지나 말라.” 『동문선』 제49권 「명 銘」 〈주호명酒壺銘〉. 4 

“모두 네가 시킨 것이다.”라니 “술, 너 때문이야!”라고 짐짓 술을 탓하는 이규보의 투정이 아이처럼 귀엽다. 어떤가, 술 한잔 하고싶지 않은가?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216663&menuNo=200018 

신윤복 <유곽쟁웅遊廓爭雄/혜원전신첩> . 지본채색 28.2×35.6cm. 간송미술관 소장. CCBY 공유마당

 

1876년 일본에 의해 조선이 개항되며 부산과 원산, 인천의 개항장에 일본인 유곽 업자와 창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곽遊廓은 관의 허가를 받은 전근대 일본의 성매매 업소이다.  주막酒幕은 길손을 위한 술집인 주점을 이르는 말이다. 막幕을 쳐놓고 술을 팔던 간단한 주막은 손님을 끌기 위해 사람들 왕래가 많은 시장이나 큰 길에 번성하기 시작했다. 『고려사』에는 주막은 고려 성종 때부터 있었던 술집으로 사교장이었으며 주식을 팔던 곳이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 이미 주막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윤복의 <유곽쟁웅> 화제에서 의문이 생긴 것은 '유곽'이 조선 개항 이후에 생겼는데 그림의 제목이 된 점이다. 비록 축첩이 인정되던 사회이긴 하였으나, 기생집에서 은밀한 성매매가 있었겠지만,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공창이 있을 수 없었다. 더구나 신윤복의 생몰연도는 1758-1814년이다. 어찌된 영문일까? 옛 그림들이 작가가 직접 화제를 써놓은 것도 있지만, 제목이 없이 그림만 남겨진 그림들이 많다. 이 그림은 《혜원 전신첩》에 들어있던 그림인데 혹시 개항기 이후 고미술 연구가 활발할 때 붙여진 제목이 아닐까. 이 그림에서 '유곽'이라 함은 '기생집'을 뜻할 뿐 그것이 '공창'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림은 기생집 앞에서 힘겨루기로 주먹다짐이 막 끝난 장면이다. 가운데 남자가 웃옷을 걸쳐입고 있다. 제목처럼 용맹을 겨룰만한 체격은 아니다. 시쳇말로 복근의 식스팩도 없는 허여멀건한 남자의 모습일 뿐이다. 


종이책 출간으로 설명 일부를 삭제함


아래 그림 <만월대계회도滿月臺契會圖>에도 김홍도가 그린(그렸다고 전해지는) 취객의 모습이 있다. 술이란 참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어떤 이는 취해서 힘이 불끈불끈 솟아올라 주먹다짐을 하고(혜원 그림), 어떤 이는 온 몸에 힘이 쭈욱 다 빠져 장소불문하고 주저앉는다(단원 그림).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216663&menuNo=200018 

김홍도  <기노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 / 만월대계회도滿月臺契會圖> 1804년 9월 개성 송악산.


<기노세련계도>라는 화제는 유한지가 지음. 위 사진은 <기노세련계도>중 연회부분만 확대한 것.

왼쪽 아래 표시한 부분은 술에 취해 주저앉은 선비를 부축하여 일으키려는 동자의 모습이다. 신윤복의 그림에서는 술취하여 힘자랑하는 장면을, 김홍도는 대취하여 주저앉은 장면을 묘사했다. 그림 속에서 뿐 아니라 현실 술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b/The_wine_is_a_mocker_1663-1664_Jan_Steen.jpg

얀 스테인 Jan Steen <와인은 조롱거리다. Wine is a mocker 1663-64. 캔버스에 유채. 87.3 x104.8 cm. 노톤 시몬 뮤제움, 캘리포니아, 미국

 

프랑스에서 와인을 수입하기 이전에 암스테르담 주민들은 맥주를 마셨었다. 오염된 운하의 물이나 저장된 빗물을 마시는 것보다 맥주가 더 안전한 음료수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보다 남쪽에 있는 프랑스는 따뜻하여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생산했다. 공화국의 경제 호황기인 17세기에는 프랑스산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뿐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 지중해, 라인강 남부에서 와인을 수입하여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와인을 마셨다. 와인 마시는 장면은 일상의 모습이 되어 그들의 풍속화와 정물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한 잔의 와인을 손에 쥔 우아한 장면의 행복한 계층이, 와인에 취하여 추태를 보이는 장면이 실생활에서 화가들의 화폭속으로 들어왔다.

 

그림에서 위로 들어올린 문의 좁은 면에 흰색의 글자가 써있다. 구약성서 잠언 20장1절이다. “포도주는 거만한 자요 독주는 화내는 것이요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는 지혜롭지 못하느니라.”는 기록이다. 어두운 배경 가운데 빛은 단정치 못한 자세를 강조한 것처럼 여인의 얼굴과 가슴으로 쏟아진다. 인사불성으로 질펀하게 퍼져있는 여인을 수레에 실어 옮기려는 장면이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듯 웃는 표정이고, 오히려 개가 걱정스러운 듯 여인을 올려다보고 있다. 짖고있는 것일까? 

이 여인은 누구일까? 풀어헤친 가슴과 빨간 스타킹은 그녀를 매춘부로 인식하게 된다. 빨간 스타킹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차림이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모피 트리밍 자켓을 입었고, 치마는 값비싼 비단이다. 이러한 차림은 중상류층 여인임을 암시한다. 그녀의 옆에는 선술집 파이프가 바닥에 놓여 있고 신발은 바닥에 팽개쳐있다. 신분이 무엇이든 만취한 모습으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선술집을 직접 운영했던 작가 얀 스테인은 그림과 같은 모습을 늘 봐왔을 것이다. 스테인은 사실 그대로의 풍속화를 그렸지만 그것은 현실 고발이기도 하고, 반면교사의 역할을 기대한 교훈이기도 했다. 물론 감상자들에게 유쾌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여인을 중심으로 시선이 모인 등장인물들 각자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윤복의 그림 속 남자들은 갓을 쓴 양반들이다. 거리에서 의복을 벗어던진 모습과 양반이라는 신분은 어울리지 않는다. 얀 스테인의 그림 속 만취한 여인의 신분은 확실하지 않지만 차림으로 보아 중상류층으로 볼 수 있다. 아니면 상류층 옷차림으로 신분을 꾸미고싶은 매춘부일 수도 있다. 거리에 널브러진 모습은 이 여인이 상류층이든 매춘부이든 상관없다. 그냥 조롱거리의 여인일 뿐이다. 조선의 그림이나 네덜란드의 그림이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술의 마력을 보여준다.

술은 무엇일까? 얀 스테인의 그림 제목처럼 "와인은 조롱이다."가 맞는 말일까, 신이 내린 기쁨이 맞는 말일까.


작가 알기

얀 스테인(Jan Havicsz Steen 1626년경 네덜란드 라이덴 출생, 1679.02.03 라이덴 사망)은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역사, 장르 화가이다. 그의 작업의 특성은 심리적 통찰력, 유머 감각과 풍부한 색채이다. 그보다 훨씬 더 유명한 동시대의 렘브란트처럼 스테인은 라틴어 학교에 다녔고, 라이덴에서 학생이 되었다.

그는 풍경, 초상, 정물, 역사적, 신화적 작품을 두루 발표할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초상화와 종교적 신화적 주제를 그리기도 했지만 생동감 있는 장르 회화(풍속화) 장면에 집중한 다작의 화가였다. 대규모 단체 사진, 가족 축제, 분주한 여관, 법원 등 구 네덜란드에 대한 많은 풍속화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스테인은 선술집을 운영했기 때문에 다양한 인간 행동을 관찰할 수 있었다.

1660년부터 1671년까지 스테인은 하를렘Haarlem에서 그림을 그렸다. 기술적인 방법을 익힌 하를렘 시절은 스테인 최고의 전성기였다. 인간의 표현을 더욱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회화의 상식을 곧잘 무시하고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집중했다. 주제는 대개 유머러스하고 그가 표현한 풍자가 도덕적 논란이 되곤 했다. 그림 속 인물들을 낱낱이 살펴보면 그의 관찰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가 묘사한 인물들은 네덜란드 바로크 시대의 어떤 화가도 아이와 어른의 모습을 더 통찰력 있고 매력 있게 묘사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 화면에서 정교한 구성은 세세한 부분까지 주의깊게 연구하여 복잡다단한 그림을 완성했으나 보는 사람들은 그러한 장황한 구성을 혼란스러워했다. 일반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이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생활에 대한 훌륭한 정보 출처가 되기도 한다. 

1669년 그의 아내 마가렛이 사망하고 1년 후 고향인 라이덴으로 돌아갔다. 30년 미만의 활동으로 신중하게 완성된 500작품 이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그 예를 찾기가 어렵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1697-1764) 시대까지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과감하고 진실을 강조하는 주제를 그린 화가, 그는 1679년 라이덴에서 사망하고 피터스커크의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낯선 말 풀이

행례行禮               – 예식을 행함.

유소보장流蘇寶帳 – 술이 달려있는 비단 장막. 주로 상여 위에 친다.


https://www.bbc.com/news/world-middle-east-45534133 

https://ko.wikisource.org/wiki/%EC%9E%A5%EC%A7%84%EC%A3%BC%EC%82%AC 

https://ko.wikisource.org/wiki/%EC%82%B0%EC%A4%91%EC%8B%A0%EA%B3%A1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365A_0520_040_0130_2002_005_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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