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화가 나를 소설가로 안내할 줄은 미처 몰랐다.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밤늦도록 친구와 이야기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프레디 머큐리의 열정이 내 안에 무엇을 건드렸나 보다. 그날 이후 내 인생이 다른 각도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영화는 프레드 머큐리의 음악과 인생을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다. 한 예술가의 인생을 통해 음악이 인생을, 인생은 음악을 노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음악이란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함께 살아가는 친구라는 걸.
그때부터, 누군가의 인생을 그 사람의 인생 곡과 함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누군가가 누가 될까? 이야기를 상상하다가 소녀가 중년이 돼서 다시 만나면, 그들이 듣는 음악은 달라질까? 궁금해졌다. 여기서 이 소설은 시작됐다.
늘 우리 곁에 있어 준 음악과 친구. 삶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굽이치며 빛과 어둠을 넘나들지만,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게 해 준 건 음악과 친구였다. 위로와 응원을 보내 준 모든 존재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등장인물에게 삶을 입힌다
15살, 중학교 2학년 세 소녀가 있다. 그들은 친구다. 소외된 세 소녀는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미경이가 올드 팝 카세트테이프 전집을 미희에게 떠넘겼고, 미희는 그 음악 테프로부터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 세계로 들어가는 미희는 불행하기만 하다. 미희의 불행은 세 친구 사이를 어떻게 변하게 했을까?
25년 만에 다시 만난 세 소녀. 아니, 이제 중년이 된 그녀들은 여전히 서로의 친구다. 25년이란 긴 세월도 그녀들의 소녀 시절을 지울 수는 없다. 다시 만난 기쁨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서로의 삶을 알아 갈수록 그녀들은 눈물이 날 뿐이다. 떡볶이를 먹던 소녀들이 소주를 마시며 나누는 인생 이야기는 맵고 쓰기만 할까?
추억과 사연으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세 소녀는 추억의 장소에서 그녀들의 음악을 듣고 서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뭔가 충분하지 않다는 걸 그녀들은 알고 있다.
그때 그녀들 앞에 나타난 노숙자인지 방랑자인지 알 수 없는 할머니, 그녀들은 할머니를 뒤쫓기 시작한다. 왠지 할머니가 이대로 거리를 헤매게 둘 순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를 다시 만난 미희는 뜻밖의 상황과 마주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다시 떠나고 세 친구는 할머니가 남긴 말에 말문이 막힌다. 아니 다른 말이 트이기 시작한다. 할머니와 미희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녀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소설을 쓰며 알게 된 인생의 비밀
세상이 가르쳐 준 질서에서 벗어나면 불행해진다고 배웠다.
그러나 두려움이 모든 감각을 지배하면 반듯하지만 자신에게 무지한 삶을 살게 될 뿐이었다. 자신을 알기 전에 세상 질서에 익숙해지면, 잘 사는 게 뭔지도 모르고 잘 살려고 애쓰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잘 산다'라고 알고 있는 기준은 가짜가 아닐까? 거리 위를 떠도는 할머니를 통해 의문을 던져본다.
할머니는 외모나 명함으로 인생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는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인물이다. 잘 산 인생의 편견을 없애고 싶어서 노숙자처럼 표현했지만, 그분은 여행자다. 그분의 삶을 인생 여행자로 설정하고 그분에게 내가 듣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 “슬퍼하지 마, 인생은 여행이야.” 또 깃털 팔찌는 금과 은은 줄 수 없는 자유, 영혼의 소리를 상징하는 의미로 만들었다. 소설 작법이 뭔지도 모르고 내 멋대로 써서 어설프지만,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읽어주신 독자님께 감사하다.
천 상병님은 시를 짓는 삶을 소풍이라 하시며, 인생을 자유롭게 바라보셨다. 나도 할머니를 통해 슬픈 너머를 보는 자유로운 시선을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역량이 부족해서 아쉽다. 먼 훗날 내가 만난 누군가가 슬픈 눈을 하고 있다면 “슬퍼하지 마, 인생은 여행이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고 이 소설이 그 말이 되길 바란다.
소설은 스스로 만들어진다.
단짠 작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등장인물이지만, 소설이 시작되면 글 속에서 각각의 등장인물이 스스로 성장하며 이야기를 펼쳐간다. 시작은 내가 했는데, 이야기의 완성은 소설 스스로 만들어가는 건 아직 소설 작법을 몰라서일까? 소설 쓰기의 기초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내 소설은 내가 아닌 상상 속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상상 속 현실 이야기가 될 거란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