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만큼 하다 그랬다면, 괜찮아

고마워요, 나의 뮤직 스타 7

by 단짠

광안리 카페 IN은 실내 온도가 25도는 되는 거 같다. 얼굴이 붉게 물들 정도로 따스하다. 인생 온도와는 정반대의 공간이다. 여기서 내가 멈춘다면 25년 만에 찾아온 예의가 아니다.


“미경아, 경숙아, 내가 잘한 것도 내가 잘 못 한 것도 아니야. 난 그저 그랑 살아왔어. 그러다 그렇게 됐어.”


주책이다. 왜 눈물이 흐르는 거야. 역시 미경이 말대로 난 얄밉다. 재수 없다.


“됐다. 니가 살아온 얘길 우째 다 알겠노. 그럴만하니 그랬겠재. 야, 미경 가시나야 니 기죽지 마라. 외동아들 키운 히스테리 시어머니 모시고 살 만큼 살았음 된기다. 미희 니도 바람 폈든 지랄을 했든 할 만큼 하다 그랬음 된기다.”


역시 경숙은 카리스마가 있다.


“문디 가시나들 좀 잘 돼서 오지.”

“안된 건 모고? 나 또 시집 갈기다. 음청 부자 골라서.”


미경의 말이 어이없는 이유가 뭘까? 그런데 어이가 없어서 우린 웃었다. 심각한 분위기는 개나 줘 버리라는 듯이 까르르까르르.


“낸 음청 가난했잖아. 식구들 밥해댄 게 7살 때부턴가? 모르겄다. 엄마는 파출부로 식당일로 닥치지 않고 일하느라 집안일은 내가 다했다. 오라버니랑 동생, 주정뱅이 아버지까지. 세 남자 밥해주느라 지긋지긋했다. 엄마는 지금도 아들밖에 몰라. 난 당연히 수발들어야 하는 거고.”

“어머니 건강하시고?”

“류머티즘 관절염. 고생 좀 한다. 그 잘난 아들들은 와보지도 않아. 내가 엄마랑 같이 살다가 얼마 전에 병원에 보냈다. 지긋지긋한데, 떼어낼 수 없는 지랄이다. 내겐 엄마가 웬수다.”


그녀의 말과 함께 기억이 되살아났다. 거제동 언덕에 살았던 그녀의 집을 처음 찾아갔을 때, 난 적잖게 놀랬다. 아파트에 살았던 내게, 재래식 화장실에 쓰러질 거 같은 지붕, 어설픈 돌계단을 내려가야 있는 어두컴컴한 부엌,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가스레인지가 아닌 곤로, 싱크대가 아닌 서랍장만 덩그러니 놓인 보잘것없던 부엌을 가진 찌그러진 그녀의 집. 그 집으로 올라가던 길은 또 얼마나 좁고 불규칙한 곡선으로 이어져 갔던가. 난 그 비위생적인 비탈진 골목길이 역겨웠지만, 좋아하는 경숙이네 가는 길이라 참아냈다.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은 어찌나 구불구불하던지, 낮은 돌담이 줄줄이 이어진 집 안을 들여다보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내 친구 경숙이가 이렇게 누추한 곳에 산다니. 이렇게 가난하다니.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집이 온몸으로 말했다. 가난해. 그제야 왜 그녀가 떡볶이를 잘 안 먹고 집에 일찍 갔는지 알 수 있었다. 왜 준비물을 잘 챙겨 오지 못했는지도.

그녀의 집을 처음 다녀온 후 나는 자주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경숙이랑 함께 있는 공간이 어느 공간보다 내겐 안심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준비물을 두 개씩 챙겨가기 시작했다. 경숙이랑 같이 쓰고 싶어서였다. 큰 키만큼 의젓한 경숙이가 내게는 든든한 벗이었다. 나를 지켜주는 만큼 나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경숙은 그때도 요리를 잘했다. 된장 풀어서 게 껍데기 하나만 넣었는데도 된장찌개가 어찌나 맛있었던지. 그녀가 끓여주던 아니, 데워 주던 된장찌개를 기억해내니 미소가 지어진다. 7살부터 식구들 밥상을 챙겨 온 경숙에게 요리는 일상의 짐이었으나 지금은 삶의 무기가 되어준 것이다. 경숙을 다시 바라본다. 참 든든히 잘 살아 낸 내 친구다. 그런데 왜 넌 슬퍼 보이니, 15살의 너의 눈빛과 달라진 게 없구나.


“벌써 한시다. 가자 마.”


미경이 어느새 하이톤 목소리를 되찾아서 카랑카랑 우릴 재촉한다. 경숙이도 나도 미경의 하이톤이 그저 반가울 뿐이다.


“가자. 그리고 우리 생긴 대로 살자.”



https://youtu.be/LSkdINo1GXw

아이와 나의 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야

거울 속에 마주친 얼굴이 어색해서
습관처럼 조용히 눈을 감아
밤이 되면 서둘러 내일로 가고 싶어
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
물결을 거슬러 나 돌아가
내 안의 바다가 태어난 곳으로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로와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
두 ㅂㄴ 다시 날 모른 척하지 않아
...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 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 아이유 -

https://youtu.be/LSkdINo1GXw


사진 © taylor_smith,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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