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초를 둘러 맨할매

고마워요, 나의 뮤직 스타 8

by 단짠

새벽 1시를 향해 가는 광안리 해변이지만 아직도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내일 다시 경숙이 가게에서 모이기로 하고 택시를 잡으러 도로로 서둘러 가는데, 어? 저 할머니! 아까 카페 창밖에서 시선을 붙잡던 행색이 특이한 할머니가 다시 보였다. 여전히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스듬하게 커다란 보따리를 지고 있었다.

마치 넝마주이의 행색이 저러할까? 어렸을 때 버려진 물건을 주워가 고물상에 파는 사람을 넝마주이라 부른다고 들었고, 그분들이 입은 옷이 허름해서 아이들이 볼 때 무섭다 하면 ‘엄마 말 안 들으면 넝마주이가 주워 간다’라고 겁박을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행색도 넝마를 여러 겹 껴입은 누추한 복장이었다.

하얗게 샌 머리를 따서 소녀처럼 묶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 목과 팔찌에 여러 색깔의 천으로 목걸이인 듯, 팔찌인 듯 겹겹이 두른 것도. 모든 게 남루하고 독특했다.

내 시선이 강렬했나? 갑자기 할머니가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할머니의 눈빛과 나의 눈빛은 마주쳤다. 그 눈빛은 진지했다. ‘뭐지?' 이 예사롭지 않은 느낌은. 할머니는 남루하고 독특하고 진지하고 그래서 섬뜩했다. 미경과 경숙의 팔을 붙잡고 방향을 틀어 할머니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머고? 해장국은 낼 먹자고? 택시나 잡자.”

“그게 아니고 이상한 할머니가 있어서.”


미경이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보았다.


“누구? 아무도 없는데?”


할머니가 안 보인다. 이상하다. 내게도 그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몇 초 사이에 도로 위에서 사라질 만큼 빠르진 않을 것 같은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어디로 가셨지? 할머니의 보따리 안에는 뭐가 있을까?'


“야야, 저 할매 아이가? 저 건너편에.”

“응 맞아. 언제 저까지 가셨데?”

“패션코드가 특이하시다.”

“판초를 입은 기가? 담요를 둘러 매신 기가? 노숙자 할매?”

“아 그런 거 같아. 몇 시간 전에도 이 거리에 있었어.”


우리 셋은 동시에 할머니를 바라봤다. 그녀들도 나처럼 시선을 쉽게 뗄 수 없었다.


“노숙자 맞는 갑다. 이 시간에 거리를 헤매시네? 우짜노 잘 데가 없느가부다야.”

“경찰에 신고할까? 너무 춥잖아.”

“신고하기 전에 할매한테 가서 물어보자. 그게 맞다.”


역시 경숙은 의젓하다. 성큼성큼 길 건너편의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미경과 나는 엄마 뒤를 쫓는 새끼 오리처럼 재빨리 쫓아간다.


“할머니, 추운데 집에 안 가고 뭐하세요?”


백발머리를 소녀처럼 딴 할머니가 경숙을 쳐다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지만 경숙의 질문이 싫지는 않으신 거 같다.


“할머니, 댁에 모셔드릴까요?”


여전히 할머니는 그저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기만 하신다.


“할머니, 밤이 늦고 추워서 밖에 계시면 병나세요. 댁으로 가셔야 해요. 택시 태워드릴까요?”


경숙을 미경을 그리고 나를 차례로 시선을 두시던 할머니는 커다란 보따리를 다시 한번 들어 올려 어깨에 둘러매시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는 듯이 스윽 지나쳐 걸어갔다. 서로를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던 우리는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머니.”

“와따 뭔 할매가 걸음이 저렇게 빠르니?”

할머니를 못 쫓아가서가 아니라 할머니가 너무 무심히 걸어가셔서 더 이상 쫓아갈 이유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우리 해장국 먹고 가자.”


할머니는 추운 겨울밤 어디로 가시는 걸까.. 잘 곳은 있는 걸까? 자꾸 마음이 쓰였다.


https://youtu.be/fCVBjFIZFuQ

그 또한 내 삶인데

작은 창에 기댄 노을이 남기고 간 짙은 고독이 벌써 내 곁에 다가와 더없이 외로워져
보이는 건 어둠이 깔린 작은 하늘뿐이지만 내게 열려 있는 것 같아 다시 날 꿈꾸게 해
손 내밀면 닿을 듯한 추억이 그림자 되어 지친 내 마음 위로해주고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해
계절 따라 피어나는 꽃으로 세월을 느끼고 다시 고독이 찾아와도 그 또한 내 삶인데
.....
더는 사랑이 없다 해도 남겨진 내 삶인데 가야 할 내 길인데 그것이 내 삶인데 - 조용필 -


사진© greenxii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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