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잠을 깨우지 않도록 말이에요.”
“정원에 물 주라는 얘기 못 들었나요?”
나는 강렬한 햇살에 눈을 제대로 못 뜨다가 한참 뒤에야 그 남자를 알아본다. 나를 이 정원으로 불러들인 장본인, 바로 정원관리인이다.
“아, 이제야 나타나다니…” 나는 푸념하듯 그를 보고 말한다.
“후회돼요?” 하고 정원관리인이 묻는다.
“후회가 문제가 아니라…”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정원관리인이 머리 위에 얹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원반을 본다.
“머리 위에 그건 또 뭐예요? 할로윈 코스프레?” 내가 원반을 가리키며 묻는다. 정원관리인은 내 말을 가소롭다는 듯 웃어넘겨 버리고 화제를 바꾼다.
“아까 종소리 들었어요?” 정원관리인이 묻는다.
“네.” 내가 짧게 대답한다.
“부고(訃告)의 종.”이라고 정원관리인이 말한다.
“네?” 내가 다시 묻는다.
“부고의 종은 누군가의 죽음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종이에요. 누군가 잠든 사이에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죠. 이튿날 아침에 그것을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잠을 깨우지 않도록 말이에요.”
“그럼 어젯밤에도 누군가 죽었다는 건가요?”
“그렇죠.”
“누가 죽은 거죠?”
“아까 잠시 작별인사를 나눈 걸로 아는데… 어떤 할머니와 보잘것없는 새 두 마리, 그리고 잉어 한 마리가 죽었죠. 아! 돼지도 한 마리 죽었어요.”
나는 정원관리인을 똑바로 쳐다본다. 매의 눈처럼 생긴 그 두 눈을 바라본다. 지금 그가 한 말이 소녀와 주근새, 악취까치와 잉위, 돼지세끼에 관한 이야기가 맞는지 나는 확인하려 한다.
“맞아요. 그들의 죽음을 말하는 거.” 내가 묻기도 전에 내 생각을 꿰뚫는 것처럼 정원관리인이 먼저 대답한다.
“당신이 죽였나요?” 내가 묻는다.
“천만에. 나는 지켜만 볼 뿐, 직접 살생을 하지는 않아요.”
“그들이 죽는 걸 지켜만 봤다고요?”
“그럴 수밖에.” 하고 정원관리인이 말한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죠? 누군가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방관을 하다니요?” 나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봐요. 진정해요. 참 재미있네요.” 정원관리인이 말한다.
“뭐가 재미있다는 거죠?” 내가 분노 섞인 표정으로 말한다.
“그럼 너는 뭐했는데?” 정원관리인의 존댓말이 사라지고 얼굴색이 갑자기 달라진다. 그 기운에 압도당한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잃는다.
“이봐. 너는 뭐 했는데? 어떻게 ‘사람’이 ‘방관’을 할 수 있냐고? 일단 나는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방관’이라고 볼 수도 없지. 전체적으로 관여를 하는 중이니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요!”하고 내가 말한다.
“나는 지켜보기라도 했는데, 너는 한가롭게 목욕이나 하고 있었잖아. 그리고 그들이 너에게 중요한 존재였나? 너는 그들을 견디려고만 했지. 네가 싫어하는 부류들이잖아. 아닌가? 카하이? 정말 아니야? 라다메스?”
“카하이? 라다메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계약서에도 썼지만 제 이름은 엄지라고요.”
“아… 운명이란 참 부질없는 반복에 불과한 것.” 하고 정원관리인이 말한다.
“뭘 어쩌라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차라리 그만두겠어요.” 내가 말한다.
“그건 불가능해요.” 정원관리인이 다시 존댓말로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파격적인 일자리를 제안해놓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는 이 수수께끼의 남자에게, — 아무런 이유도 없이 — 나는 이렇게 묻는다.
“혹시 아버지가 보내셨나요?”
“그걸 이제야 알겠어요?” 정원관리인이 말한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뜨거운 눈물을 쏟고야 만다.
“괜찮아요. 이제 오늘부터 정원에 물을 골고루 잘 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정원관리인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나는 정원이 흠뻑 젖도록 눈물을 쏟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