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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오고 그래서 그 집 수제비가 생각났다. 다른 집 수제비들은 먹고 나면 어김없이 붓고 뱃속까지 부대끼는데 그 집 수제비는 밤에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조미료 맛도 거의 안 나고 밀가루 맛도 거북하지 않아서 참 좋다. 언젠가 물어보니 조미료는 정말 아주 쪼오끔만 넣는다고 했다. 그 집은 김밥도 속이 편하다. 언젠가 주인아주머니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당근을 기름에 볶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며 수제비도 그렇고 김밥도 그렇고 내 입이 되게 미세한 걸 잘 잡아내는 것 같다고 했다. 단순히 맛의 차이만은 아닐 테니 다른 손님들도 충분히 느낄 것이다.
어제도 혼점을 해결하기 위해 수제빗집으로 갔다. 대부분의 점심시간은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창밖으로 멍을 때리며 보내는 편인데 한 번씩 그렇게 식사류가 당길 때가 있다. 수제비를 주문한 뒤 요즘 푹 빠져있는 살림 브이로그를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 목소리는...?'
"네, 어서 오세요."
되게 낯익은 목소리가 주인아주머니와 시끄럽게 인사를 나누며 내 뒤 좌석에 앉아 김밥을 주문했다. 이어서 입을 쩌어억 벌리고 하품하는 소리가 분식점 내부에 울려 퍼졌다. '하... 맞네. 하필 내 뒤에 앉아서는...' 옆 테이블에 있던 손님들과 주방에서 일 보던 아주머니들까지 일제히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한 두번도 아니고 민망함은 왜 꼭 내 몫인 건지. 주문만 하지 않았어도 바로 일어나 나가버렸을 텐데. 휴대폰에 고개를 더 푹 처박았다.
같은 식당에서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며 꽤나 잘 피해 다녔는데. 어제는 촉이 제대로 틀려버렸다. 그 좁은 공간, 바로 내 뒷좌석에서 내 뒤통수를 못 알아봤을 리 없을 텐데.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잠시 후 뒷좌석의 김밥이 먼저 나왔다. 쩝쩝짭짭 음식 씹는 소리와 츄릅츄릅 국물 떠먹는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왔다. 국물 먹는 틈틈이 "으어 으어" 추임새까지 빼 먹지 않고. 사람들이 자꾸만 힐끔거린다. '하... 진짜...' 면전에서 먹는 듯 비위까지 상했다. 그러니 내가 겸상을 하겠냐고. 안 하는 것보다 못 하는 게 먼저다. 초반에 그런 식탁 머리 비매너에 얼마나 놀랐던지. 심지어 한무식의 식사 속도는 폭풍 흡입 수준이다. 우리집 청소기 1500w 수준과도 다르지 않달까. 겁나게 빨리 먹고 빤히 쳐다 보고 앉아 있는 게 정말 싫었는데 어제는 그게 또 다행이었다.
내 수제비가 나올 때 즈음 한무식이 나갔으니까. 양이 많아 한 그릇을 싹 비우지는 못했지만 혼자라서 편안하게 잘 먹을 수 있었으니까. 내가 감자 좋아하는 걸 아는 주인아주머니는 언제나 넉넉한 인심을 내어준다. 무말랭이무침은 배추김치보다 맛있어서 갈 때마다 거의 두 번씩 먹는 편이다. 우산에 탁탁 탁탁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주변 풍경을 즐기며 느긋하게 사무실로 들어왔다.
꺼억 꺼억 바로 옆자리에서 한무식이 확성기 트림을 한다. 하아... 또 시작이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오늘도 변함없다. 그래 오래 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