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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난 Sep 29. 2024

6화 정전

불이 꺼지다

정전


"297번 손님 안 계시나요?"


"드르르륵, 드르르륵."


형과 함께한 어린 시절을 회상하던 중, 진동벨이 울리고 있다는 걸 늦게 알았다.


"여기 있어요."


진동벨을 건네주고, 주문한 블루 레모네이드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 저녁, 몇 년 만에 형을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했다. 형이 이 카페를 개업한 이후 처음 방문했는데, 직원들이 손님들에게 매우 친절했다. 종이접기 선처럼 가지런히 정리된 물건들, 모기가 미끄러질 정도로 깨끗한 청소 상태, 손님들이 집처럼 편하게 쉬다 가라고 신경 쓴 의자들. 남들은 모를 수 있지만, 내겐 어린 시절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통유리창을 보니, 어린 시절 나와는 다른 이유로 형도 집이 숨 막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하. 밀폐된 공간에 손님들 가둘 줄 알았는데... 조금만 빨리 지금처럼 형을 바라봤다면 좋았을 텐데...'


'물건을 소중히 하고 지켜라. 집과 가족을 소중히 지켜라. 약속을 지켜라.'


'형이 내 온몸에 새겨준 그 가르침을 따랐다면, 지금 이 후회를 안 할 수 있었을 텐데...'


주변을 둘러보니 카페는 사람들로 붐비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서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는 노부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꿀 떨어지는 눈빛을 주고받는 연인들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찬 내일이 보였다. 한쪽 자리에는 아기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이 모여있었고, 아기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육아로 지친 심신에 삶의 공기가 듬뿍 들어가길 바란다.


구석 자리에는 홀로 앉아 아까부터 출입문만 바라보는 엄마의 뒷모습과 유모차에 탄 아기가 보였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저렇게 한 곳만을 바라보는 이유가 뭘까?'


그 순간.


펑!


"으악!" "뭐야?" "응애, 응애."


아기들이 소리에 놀랐는지 울기 시작하자, 엄마들은 하나 둘 아기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몇몇 손님들도 슬슬 갈 준비를 했다. 카페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차분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다행히 통유리창 덕분에 정전 속에서도 큰 지장은 없었다. 오히려  안에서 바라본 세상의 불빛들이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남아 있는 손님들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며 이 순간을 즐기는 듯했다.


구석 자리의 엄마는 이 소란 속에서도 변함없이 출입문을 응시하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했다. 이 아기는 크게 놀라지 않았는지 울고 있지 않았지만, 불편한지 발버둥을 치며 유모차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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