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시라는 믿음 *
말을 모으는 나의 여기에서
이것도 시라는 믿음에서다.
쓸쓸하게 남아 있을지도 모를 마음을 주워 옮기는 마음으로,
수신인 없이, 쓸모없는 말들도 쓰다듬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보낸다
아무도 모르게 고요하게 화답하는 일처럼
나는 네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고.
적막한 위로의 소란을 꾹꾹 눌러쓰는 일과,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여기 있던 가장 위험한 고백들이 적힌 문을 여닫는 세계의 빈틈에서
사방에서 매만지던 너를 위한 말들
내 말 뒤 멀찌감치 뒤따라 오는 행간 뒤로 또박또박 적힌 네 글자에 눈꺼풀을 비볐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너를 위로하고, 더듬는 사람. 여기 내가 있었다는 걸 너는 영영 모르지
나의 말들이 퍼렇게 멍들어 적막한 너에게 닿으려고 해
다시 네 세계로 길어 올려 줄게, 적어가는 말들을 다시 모으자. 내가 너를 알지 못했기에 끌어올려 안아줄게. 서로를 여전히 몰라도, 처음부터 우리는 우리를 몰랐으니까, 어차피 계속 모를지라도.
하나씩 하나씩 읊다가 영영 서로를 모를 우리에게 나도 여기서 같이 울었다고 말하기로 할게. 나도 너와 같았다고. 그래서 우리 같은 여기에서 어느 때 혹여 지금 동시에 말하곤 했던 너와 나의 흔적에 대해, 그리하여 아무도 모르는 이에게서 내게 가장 필요한 위로가 아득한 까만 바닥에서 길어 올려질 때, 그럼 그때도 아무도 듣지 못하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여기의 몸통이 진짜 시라고 여길 수 있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야 가장 우리다웠던 고백들에 손을 맞대고 기억하자는 말
가장 밑바닥에서의 차오르던 우리들의 시, 나와 너의 문장들
나는 내가 누군지 아주 오래 전에 잊어 버렸어요.
걱정하지마, 다시 생각해보면 돼
너는 이미 깊고 깊은 샘을 가진 사람인 것 같은데
그냥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가 보기에 너는 꽤 진중하고 신중해. 그냥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런 질문을 생각하는 걸 멈춰보면 어떨까
너의 삶을 즐겁고 활기차게 살아봐
너의 조각은 너의 모든 것이니까
모두들 그러하듯이
오랫동안 참 너는 슬펐겠어
그거 알아? 나도 늘 중간이었거든.
그러니까 괜찮아.
걱정하지마
다시 네가 누군지 생각하면 돼
이것도 시라는 믿음 * : 시인에게 문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1인 이상의 주체들의 ‘어떤 방식으로든’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발현의 순간이 시적 순간이라 말한다. 때로는 침묵일지라도 모든 이들은 지금을 표현하고 있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처절하게 표현하는 ‘자기만의 언어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떄론 문학적 장치를 설치하여 실험한 후 그 장면을 기록하는 박소진 시인의 문학실험 프로젝트 < Enquête : Poetry >의 부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