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여행기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들은 나를 빠르게 성장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지난 10년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들을 해 왔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에 대해선 아직 많이 목이 마르다. 더 많은 역사, 세계사를 배우고 싶고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번 몬치 카르멜로에서 우리는 Goiás(고이아스)로 향했다. 그 이유는 국제 자연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FICA(Festival International de Cinema e Vídeo Ambiental)이라고 하는 이 영화제는 무려 24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꽤 역사 있는 영화제이다. 몬치카르멜로(Monte Carmelo)에서 아침 일찍 분주하게 움직였다. 고야스까지 차로만 545km 거리로 7시간 반이 걸린단다. 물론 히치하이킹이고, 친구들의 응원과 함께 오늘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막연함에 출발해 본다.
몬치카를멜로에서의 히치하이킹은 정말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꽤 보수적이라 듣긴 했었으나, 이렇게 어려울 진 몰랐다. 어렵게 Araguari에 도착했고, Caldas Novas로가는 차를 얻어 탔다. 사실 Cadals Novas에 하루 묵을까 고민을 하긴 했었다. 워터파크 같은 것이 있는데 따듯한 물이라 한다. 하지만 영화제에 제시간에 가야 한단 압박감에 하루 더 머무는 건 포기하기로 한다. 마침 우리를 태워준 운전자가 고야스까지 태워줄 수 있다며 340 헤알(약 8만 원가량) 정도를 내라 한다. 몬치 카를멜로에서 버스를 탈까 고민했었기에 알아본 버스금액보단 저렴하다는 걸 깨닫곤 바로 거래에 승낙한다.
이 기사가 Caldas Novas를 지날 때쯤 먼 길이라는 걸 깨달은 탓일까, 급 운전을 과격하게 한다. 특히 마지막 한 시간은 거의 지옥의 시간이었다. 최고 제한속도 시간당 80km의 도로에서 167을 밟는 것을 보고 온몸이 굳어져갔다.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수차례 고민하고 생각에 잠겼다. 도착 후에야 알렉스에게 말했지만, 결혼 후 신행 가는 커플들이 교통사고로 죽는 드라마는 사실 허구가 아닌 사실에 입각한 스토리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무사히 고야스에 도착했고 그 두려움을 해소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고야스 시내에 들어서니 성당에서 7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바로 알렉스의 친구 안드레가 우리에게 도착했으면 하는 시간인 7시 정각에 마을로 들어 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영화제를 보러 들어갔다. 우리가 보려고 한 영화는 안드레의 친구가 만든 A invenção do Outro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타인의 발명이라는 영화이다. 브라질에서는 FUNAI(National Indian Foundation)이라 하여 원주민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하는 정부 기관이 있다. 원주민 접촉을 매우 조심하되 그들이 잘 보존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번 영화는 푸나이의 활동을 기록한 내용들인데, Korubo라는 부족의 사람들이 Matis에게 쫓겨 가족들을 잃은 몇몇 부족들을 위해 가족을 찾아 나서는 내용이었다. Korubo는 대부분이 외부 사회에 미접촉된 부족이며, 그들의 모습, 행동 사고방식 모든 것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간에게 너무 가까운 원숭이를 잡아먹고 다시 재회한 가족들을 반가워하며 얼빠진 얼굴로 어-어-어- 하며 노래를 부른다. 너무 신기하고 충격적이었다. 우린 모두 같은 사람인데 환경에 따라 얼마큼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특히 우리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살아가며 지혜를 배우고 법을 만들고 발전해 나가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변화를 따라갈 순 없다. 이 법칙은 요즘 시대의 테크놀로지와 노인들의 삶이 반영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모든 카페와 식당은 키오스크와 큐알코드 메뉴로 바뀌어져 가고, 신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한 노년층은 점점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모습과 비슷한 모양인 것이다. 다시 돌아가, 원주민들이 이 땅을 차지하고 산지 수십 년, 수백 년 수억 년일 텐데 백인들이 들어와 땅을 차지하고 법을 만들고 법적 처리하지 않으면 땅의 권리가 없음을 말하는 시대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최근에 당선된 룰라 대통령이 영토 보장법령 서명을 하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려 노력하고 있다.
(유튜브 비슷한 영상 : https://youtu.be/0xkvw90e1fQ )
이 축제에선 정말 다양하고 색다른 원주민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들의 색을 표현해 내고 사회로 목소리를 내는 순간 들인 것이다. 단 한 번도 원주민들에 대해 깊게 고찰하거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수차례 침략을 당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우리 한국인들은 우리 땅에 뿌리를 내려 빼앗기지 않고 오랫동안 한 민족으로서 살아왔다. 그래서 그 원주민들의 고충에 대해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2018년 우루과이를 여행할 때 스페인 사람들이 모든 원주민을 학살하고 유럽인들이 정착한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우루과이엔 모두 백인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브라질도 남부로 내려가면 대부분 백인들로 가득하지만 북부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다양한 인종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것 같다. 흑인, 원주민, 백인 등등..
원주민들의 얼굴을 잘 들여다보면, 정말 아시아인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몇 년 전 알렉스가 찍은 내 얼굴에서도 원주민의 얼굴이 보인다.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인류의 이동이 남미에서 정착하여 그들이 섞이지 않고 보존되어 온 인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김알지의 38대손으로 우리 집안에는 호적이 있다. 나의 선조들을 책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외국인들에게 이야기하면 너무나 신기해한다. 외국인 친구들은 많은 인종들이 섞여있고 대륙간 이동 전쟁 등으로 뿌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뿌리를 찾아 나서는 여행들도 많이들 한다. 영국인 S는 이란계 친구로 팔레스타인에서 그녀의 친인척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했다. 미국인 M친구는 이탈리아인으로 이탈리아에 가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 등을 찾아 나서는 여행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의 뿌리가 궁금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보다.
고야스는 매우 한적한 시골동네로 나의 첫 번째 세네갈 삶을 시작했던 Kebemer과 많이 닮은 동네이다. 밤하늘엔 은하수가 펼쳐져 있고 사람들은 춤과 음악으로 흥이 넘쳐난다. 자연이 어우러져 있다. 이 감정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예전에 하얀 뚜밥이야기를 쓰며 옆집 꼬마아이가 비 오는 날 물놀이를 하자며 불렀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옷이 젖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던 내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는데, 그 삶을 떠나 다시 Fancy 한 삶을 살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잊고 살게 된 것이다. 원주민 영화를 보며 나의 욕심과 자만심들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한 동물의 종(Species)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능이 발달하고 여러 발전을 통해 신이라도 된 마냥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처음 운전을 하던 날 “어떻게 한낱 인간이 이렇게 큰 기계를 몰수가 있지!?”라며 소리 질렀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새삼스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