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뒤의 남자에게 - 젊은 세월이 아직 남았나요?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11

by 최영훈

중급반의 그 남자

달이 바뀌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출석률은 여전히 저조한 가운데 한 남자가 꾸준히 얼굴을 보이고 있다. 낯선 사람은 아니다. 그는 중급반에서 나와 같은 시간에 꽤 오랫동안 수영을 했던 사람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 사람이라 눈에 잘 띈다. 게다가 사람도 좋아하는 모양인지 그 사람의 주도 하에 그 반에선 따로 모여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곤 했었다. 샤워장이나 라커룸에서 그 반의 다른 남자 회원과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들어서 알게 됐다.


앞에, 앞에 글에 쓴 것처럼 그 남자는 애초에 B반에 있었다. 그것도 맨 뒤에. 강사가 인원의 불균형과 그 회원의 나이를 감안해서 다른 젊은 여성 회원과 함께 우리 반으로 보낸 것이 굳어져서 계속 우리 반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전에 이 사람이 수영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거구의 몸으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바다사자 같다고나 할까? 군더더기 없으면서 여유로운 폼이었다. 물론 속도는 느렸다. 그러나 그때는 혼자 마무리 운동을 하는 것이라 그러려니 했다.


사실, 처음 반을 옮기면, 특히 상급반으로 옮기게 되면 거의 맨 뒤에 서게 된다. 다른 사람의 실력을 알 수 없으니 일단 간을 보려는 것이다. 물론 수영 실력에 자신 있는, 다른 시간대의 고급반에서 온 사람이라면 앞에 서기도 한다. 첫날, 이 남자도 맨 뒤에 섰다. 이 남자는 그 후에도 맨 뒤에 섰다. 늘 맨 뒤에 서던, 다른 글에 썼던 그 발랄한 아줌마와 맨 뒷자리를 놓고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에게 뒷자리는 눈치 보기의 맥락이 아니라 편안함의 맥락인 것 같았다.


취미라도, 할 거면 잘하고 싶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이겠지만 돈을 들여 새로운 운동을 배운다면, 이왕이면 잘하고 싶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관련된 기술을 익혀 폼과 실력을 올리고 싶을 것이다. 종목이 무엇이든 말이다. 물론 그 와중에 좌절도 겪을 것이다. 테니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팔꿈치 부상도 당할 테고 배드민턴을 하는 사람이라면 손 목 부상도 당할 것이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면서 뻣뻣한 자신의 몸뚱이에 한 없이 저주를 퍼붓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진 나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을 다니면서, 온갖 고통을 참아내며 스트레칭을 하며, 그리고 비싼 장비를 사들여가며 운동을 해 왔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젊은 시절, 취미로 농구를 할 때는 오른 손잡이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서 왼 손 슛과 왼쪽 드라이빙을 무지하게 연습했었다. 대학 시절, 축구에 빠졌을 때도 양발을 쓰고 싶어서 왼 발 슛을 엄청나게 연습했고 주말이면 집에 안 간 기숙사 후배들과 하루 종일 공을 차곤 했다. 스포츠 클라이밍 할 때는 암장 문은 열지만 공식적인 운영을 하지 않는 주말에도 종종 가서 아무도 없는 벽에 매달리곤 했다. 강사가 내준 문제를 복기해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자세를 쉴 새 없이 바꾸며 도전했었다. 그 뒤에 마라톤을 할 때도, 더 뒤에 수영을 할 때도 이런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취미를 일처럼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솔직히 누군가 내게 “언제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나요?”하고 물으면, 난 당연히 “물론 아니죠.”하고 대답할 것이다. 주어진 일을 잘 마무리하고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애를 쓰기는 했지만 언제나 전력을 다 하지는 않았다. 사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아내한테도 말했지만 난 언제나 70에서 80퍼센트 정도의 힘만 썼다. 그래도 봐줄 만하고 양해가 될 만한 성적이 나와서 그 이상을 향해서 남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진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요즘은 좀 다른 마음이다. 마흔에 그만둔 수영을 쉰이 넘어 다시 했다. 다시 하면서 기대한 것은 없었다. 그저 나이 들어서도 할 만한, 부상 적은 운동이자 내가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운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돼서 좋았고, 그 운동을 꾸준히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하면서 마음이 변했다. 살이 빠졌고 몸매가 변했고 실력이 늘었다. 썩 괜찮아진 몸매를 보면서 “야, 언제까지 이런 껍데기를 갖고 살 수 있을까?”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났다. ‘야, 언제까지 이렇게 숨이 차도록 수영을 할 수 있을까?’


수영을 한 뒤 샤워를 하고 나와 라커룸에 있는 큰 거울에 내 몸을 비춰본다. 펌핑이 되어서 수영 전보다 더 근육이 선명하다. 이런 운동 효과를 보려면 50분 내내 강사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고, 1번과 2번 주자의 템포와 속도에 맞춰 열심히 수영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앞으로 3년? 5년? 아니면 1년?

돈만 내면 다닐 수 있는 수영장이니, 맘만 먹으면 평생 수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력으로, 숨이 차도록 수영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래서 그 수영을 통해 몸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 남았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 생각 끝에, 결국 가기 싫은 날도 수영장에 가게 된다. 컨디션이 안 좋으니 오늘은 적당히 하자고 다짐했던 날도 전력을 다한다. 편의점 맥주의 가격이 오른 참에 수영을 위해 맥주도 좀 줄이고 있다. 덕분에 체력도, 실력도 나아졌다.


변화를 부르는 훈련

지난 목요일, 앞서 말했던 하이폭식 훈련을 했다. 심폐지구력을 올리는 훈련으로 자세한 내용은 <자유형 만 미터를...>을 참조하시면 된다. 그 훈련을 끝낸 후 강사가 고급 B반을 보면서 한 마디 했다. “수영을 계속하는데 초보 때만큼 살이 안 빠지시죠? 오히려 살이 찌는 것 같죠? 그게 몸이 적응해서 그래요. 그럴 때 이런 훈련을 하게 되면 몸이 놀라서 변화가 생겨요. 그러니까 제가 이런 거 시킬 땐 너무 불평하지 마세요.”


뒷 줄의 남자에겐 아직 젊음 세월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껍데기를 괜찮게 만들고 속도 탄탄히 만들 시간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운동, 그거 뭐 쉬엄쉬엄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겐 어쩐지 젊음의 세월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 껍데기, 이 몸 상태로 살날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금요일, 스타트 연습을 할 때도 거의 1번과 똑같은 스피드로 자유형을 했다. 올라와 보니 1번과 2번, 그리고 나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뒤를 보니 다들 느긋하게 오고 있었다. 다들 아직 젊음의 세월이 많이 남아 있나 보다. 우리만 초조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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