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로 60년

천사의 방문

by 사나래

음력 2월 중순, 아직 겨울바람이 매섭게 부는 늦겨울 어느 날입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아기를 품에 안고, 앳된 새댁이 기차에 오릅니다. 아이를 낳은 지 한 달여—대한민국 여자라면 이 시기엔 모든 걸 내려놓고 몸조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특히 찬바람은 산모에게 금물이지만, 그녀는 산후 3주 된 여린 몸으로 겨울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


1997년 한여름, 아이를 낳았던 나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맨발로 마룻바닥을 디뎠다가 발바닥에 찬바람이 스며든 탓에 몇 년을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1965년의 산모는 산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몸으로 찬바람 속, 서울역에 서 있습니다. 전라도 출신의 새댁은 강원도에서 근무 중인 군인 남편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남편은 직업 군인이었고, 새댁은 전업주부였습니다. 그러던 중 첫 아이를 낳았고, 한 달 만에 친정아버지의 기일을 맞았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탈상은 유교 사상이 깊이 자리한 동방예의지국에서 외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녀는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며 강원도에서 전라도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서울역까지 함께 온 부부는 호남선 앞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헤어지고 맙니다. 남편은 군용 칸으로, 아내는 일반인 칸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동반 할인제도가 있었다면 함께 탈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고 가난 또한 큰 걸림돌이었습니다.그런데, 남편과 헤어진 새댁은 복잡한 서울역에서 기차를 잘못 타고 맙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군용 칸에 오른 후, 아내와 아기를 찾아 기차 안을 이리저리 헤맵니다.


기적 소리가 울리며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그때, 승차권을 확인하던 역무원이 기차를 잘못 탔다는 난감한 현실을 새댁에게 알렸습니다.혼자 기차를 타는 것도, 서울이라는 곳도 처음인 새댁은 역무원의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시절, 기차를 탄다는 것은 지금의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비즈니스 목적으로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절차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듯이. 아마도 새댁에게 기차란, 지금 우리가 비행기를 탈 때 느끼는 막연한 긴장감과 비슷했을 것입니다.그런데 그 기차를 잘못 탔다고 하니,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어서 이 기차에서 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을 것입니다.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새댁은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에서 속도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뛰어내리고 맙니다.그리고 철로 위에 떨어진 순간, 이내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선가 가물가물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오면서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은 철로 위에 쓰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아마도 아기는 오랫동안 칭얼거리며 울었을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엄마는 아기를 보호하려고 몸을 굴렸을 테고, 얇은 포대기에 싸인 아기는 엄마 품에서 살아 있었습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낯선 그곳을 빠져나와, 그녀는 다시 대전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시절엔 휴대폰은커녕 공중전화조차 흔치 않던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대전역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남편은 어땠을까요? 밤새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 틈에서 아내와 딸을 찾아 헤매던 남편. 그렇게 퀭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남편을 본 순간, 새댁은 또다시 실신하고 맙니다.표현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그 시절, 무뚝뚝한 군인 남편은 과연 그 마음고생, 그 몸 고생을 어떻게 보듬어 주었을까요?


이것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늦겨울, 스산한 서울역. 열차에서 떨어진 그 아기는 바로 나였습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는 틈만 나면 이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짠하다 못해 아려옵니다.어머니는 늘 말씀하십니다.“철로에 떨어졌지만, 살아서 이 좋은 세상을 보고 있으니 감사한 일 아니겠니?”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어머니의 눈가에는 촉촉한 물기가 맺힙니다. 아기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거기 서 있었다고. 어머니는 그분이 분명 천사였을 것이라고.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셨다고 믿고 계십니다.만 가지 상상이 스치는 순간입니다.만약 그날 우리가 살아남지 못했다면?어머니와 헤어져 이산가족이 되었을 수도,혹은 1960년대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나는 보육원에서 자랐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내 삶에 임하시다


이 모든 것이 기적이 아닐까요? 티끌 같은 생명을 살리시고, 주의 일을 조력하도록 이끄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아마도 기차에서 뛰어내린 가냘픈 모녀를 구하시기 위해, 번개처럼 빠른 천사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각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해 천사를 보내셨습니다.그 은혜가 보잘것없는 내 삶에도 임하였음을 깨닫고, 그렇게 천사의 방문을 받았던 경험이 감격스럽기만 합니다.


“우리는 이 지구를 방문하는 천사들의 사명에 대하여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늘 천사들이 우리와 협력하고 돌보아 주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실물교훈. 176).


그날, 무사히 살아남은 우리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손발이 닳도록 교회에서 봉사하셨고, 나 역시 그분의 사역을 받들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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