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도약에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태권도로 배웠네
'힘줄 때 주고, 뺄 때 빼기.' 이건 어떤 이론 같은 것이 아니다. A 동작에 힘을 100을 주다가 B 동작으로 넘어갈 때 60으로 줄였다가 마무리 C 동작에서 85의 힘으로 마무리 지으라는 것처럼 뚝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품새를 할 때마다 사범님은 힘 조절을 잘하라고 했다. 모든 걸 잘해보려 끙끙대는 내게 했던 선배의 조언처럼. 힘 조절을 하다 보면 몸이 고장 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주먹은 꽉 쥐되 어깨에는 힘을 빼고 지르기 준비 동작에선 힘을 조금만 주다가 끝에서 꽂아 넣듯 끊어내며 질러야 한다는 이 말이, 당최 몸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지. 기-승-전-'사범님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요... 몸이 고장 났어요.'가 되고 만다. 그때마다 사범님은 이 동작이 어떤 준비 동작에서 시작되어 마무리되는 지를 기억하라고 했다. 머리로만 이해하려 들었을 땐 태권도가 이토록 머리 아픈 운동이었던가 싶었다. 하지만 이런 게 운동의 매력일까? 하다 보니 몸이 원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동작을 위해 힘 조절을 할 때 어떤 준비가 필요하고, 그 과정이 내 동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하여.
쪼렙의 발차기와 고수의 발차기는 미트기에 부딪히는 소리부터 다르다. 쪼렙은 온몸에 힘을 주어 사력을 다해 발차기를 해도 '핑! 핑!' 소리가 난다. 고수는 설렁설렁 서있는 듯하다가 내지른 발차기가 미트기에 정확히 맞아떨어져 '팡! 팡!' 도장이 쩌렁쩌렁 울린다. 분명 더 힘을 준 쪽은 쪼렙(=나)인데, 우리의 결과물이 이토록 다른 것은 단순이 띠의 단계 차이일 뿐인 걸까! 몸에는 힘을 빼고, 발차기는 힘차게 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함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난감했다. 몸에 힘을 빼면 발차기도 힘이 없고, 힘을 줘야 발차기도 힘 있게 나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냔 말이다! 동동거리는 내게 내려진 사범님의 특별 처방은 다름 아닌 '다리 찢기'였다.
본격 발차기 연습 전 5분씩 다리를 찢었다. 학창 시절 체력장에서도 유연성 파트는 항상 제로에 수렴했던 나. 허리를 숙여 발끝과 손끝이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고철 로봇이 바로 나다. 5분은 생각보다 길다. 이 시간 동안 정신이 아득해지도록 다리를 찢다 겨우 풀려나면 온 몸에 힘이 빠진다. 이 기력으로 도대체 무슨 발차기란 말인가. 무엇보다 다리를 찢어 유연해지면 다리가 더 높게 나가긴 하겠지. 그런데 제 문제는 힘 조절이라면서요. 그건 또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고요. 항상 사범님식 가르침에 의심과 신뢰를 반복하는 나는 이번에도 결국 믿습니다에 이르고야 만다. 정말이었다. 다리 근육을 풀어놓으니 한결 가벼워졌고 온통 발차기에 쏠려있던 힘이 몸 전체로 분산되어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다리 풀리는 느낌이시죠? 그대로 그냥 한번 해보세요. 발차기요.'
다리가 공중에 휘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상태에서 끝에서 미트기 칠 때만 힘을 집중해서 팡! 차 보세요.'
'팡!'
어라? 나도 '핑!'이 아니라 '팡!' 했다. 오히려 아까보다 힘은 덜 준 것 같은데, 정확하게 힘이 들어가야 하는 순간에 힘이 집중되었다.
지르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힘을 빼다가 힘을 주라는 말은 또다시 나를 아득하게 했다. 이건 팔 스트레칭을 해야 하는 건지. 허리춤에서 주먹이 나갈 때부터 힘을 주고 있어서 정작 주먹이 상대방에게 닿을 땐 힘을 다하지 못한다고 했다. 고수 친구들은 주춤서기만 한 상태에서 지르기를 10번이고 100번이고 해도 정확하게 상대의 명치쯤 되는 위치에 주먹이 꽂히듯 나갔다. 그런데 내가 빠르게 지르기를 하면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의 몸부림이나 마구잡이로 몸싸움을 하는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최후의 공격만 생각하느라 어떤 식으로 힘을 써야 하는지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사범님은 지르기가 아닌 앞굽이를 연습하라고 했다. 아니 제가 못하겠는 건 지르기에서 힘 조절 하기인데요!
제 자리에 주춤서기를 하고 지르기를 하면 팔에만 온통 신경이 가 힘차게 뻗을 생각만 하게 된다. 그런데 앞굽이를 하려면 단숨에 다리를 멀리 뻗어 짧게 끊어 서야 한다. 그리고 허벅지의 힘으로 그 자세를 버텨야 한다. 이런 앞굽이를 하면서 동시에 지르기를 하려다 보면 다리와 팔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팔에 힘을 주기가 쉽지 않다. 주먹이 허리춤에서 상대방 명치로 다가가는 순간 동시에 앞굽이로 끊어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벅지도 앞굽이 동작을 버텨내는 순간에 주먹에 힘을 주니 전보다 훨씬 동작이 부드러워졌다. 얼마 전 1품을 따고 한껏 늠름해진 중학생 선배님이 동작을 할 땐 기합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악!' 소리를 낼 때 힘을 끊어뜨리면 훨씬 힘이 집중되어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범님과 선배님의 조언 모두 옳았다. 이렇게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니 머리를 굴려가며 하지 않아도 동작을 따라 힘이 이동하는 경로가 느껴지는 듯했다.
프로젝트 마무리 후 여유로운 시기를 보낼 때 되려 불안하고 초조했던 내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하다 보면 으레 생기는 여유였고, 그 시간을 즐길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아서 빨리 그다음 프로젝트를 받아 공격하고 싶었다. 공격의 대상은 나였고, 조져진 것도 언제나 나였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했고 계속 무언가를 힘주어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인사이트 넣으면서 더 쭉쭉 뻗어 올리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왜 그랬을까. 분명 어떤 부분은 반드시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태권도장에서도, 회사에서도.
발차기를 잘하려면 발차기만 죽어라 연습할 것이 아니라 다리부터 찢어놔야 한다.
지르기를 잘하려면 앞굽이와 동시에 지르기가 나갈 때 힘이 어떻게 동작으로 전달되는지 느껴야 한다.
힘을 줄 때 주고, 뺄 때 빼라는 말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굳이 힘주어 내지를 필요 없는 순간을 의미로 만드는 것은 내 몫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