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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의 거센 파도 속에서

다시 침몰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기록

by 은연주

어젯밤에는 약을 챙겨 먹고 잤는데도 지지난밤과 같은 증상이 이어졌다. 자꾸 잠에서 깨고 이어지는 악몽들. 악몽은 모두 다 남편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꿈으로 나왔으니 아마 내 무의식 속에 각인된 트라우마, 상처, 현재 불안한 내 심리들이 각색한 한 편의 비극이겠지.


어떤 꿈에선 남편이 주먹으로 내게 폭력을 휘둘렀고, 다른 꿈에서는 남편이 바람을 폈고, 날 쫓아오는 남편을 피해 도망치는 추격전도 있었다. 그때마다 꿈속의 나는 영혼이 파괴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허무함 내지는 비통함도 조금 느꼈던 것 같고.




부디 내일은 잔잔하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역시 오늘 아침도 절망 속에 눈을 떴다. 창밖에 내리는 비까지 나의 불행을 환상적으로 연출해주고 있다.

눈이 내려야 할 12월에 비라니. 사실 눈이 내렸어도 어차피 슬펐을 것 같다.


꽃피는 봄에 결혼을 했는데, 그 뒤로는 계절을 음미한 기억이 없다. 반년을 통째로 인생에서 도려내듯 허우적거리다가 갑자기 눈뜨고 맞이하는 게 펑펑 내리는 하얀 눈이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비참했을 것 같다.




어제는 친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곳은 어때? 지낼 만해? 연말인데 한국 올 계획은 없어?'

그녀의 문자를 보자마자 다시 공황발작이 왔다. 심장이 빨리 뛰다 못해 심정지가 올까 봐 무서울 정도였다. 처음 공황발작 왔을 때 숨을 쉴 수 없었던 그 무서움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깐 그 뒤로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같은 공포감이 반복된다.


당시 다녔던 병원 선생님은 공황장애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고 했다. 근데 중요한 건 제때 약을 먹지 않으면 만성이 되고, 그럼 일상생활에 정말 큰 불편을 겪게 될 거라고. 그러니깐 만성이 되기 전 초기에 잡아야 한다고.

나는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었고 다행히 공황장애는 더 심각해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알아차림과 참회를 반복하며 내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작은 순간에도 나는 다시 무너진다.




사실 그동안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계속 받고 있었다. '추석에 한국 와? 니가 사는 나라로 놀러 가도 돼?', '외국에서 보내는 신혼생활은 어때? 자랑 좀 해줘' 그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더더욱 죽고 싶었다.

신혼생활은 알콩달콩 지내다가도 지지고 볶고 싸우고 맞춰가며 둘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일상의 행복이라고 기대했다.


나는 신혼인데 그런 행복을 맛본 기억이 없다. 대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홀로 처절하게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없앴다.

‘별일 없지? 잘 지내지?' 더 많은 연락을 받기 시작한 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게 먼저 연락해 주는 친구들은 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물론이고, 고맙게도 마음을 내어주는 노력을 하는 건데도, 난 아직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싫었다.

공황발작이 한 차례 지나가면 자기혐오가 따라온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하지.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이 나서 숨어있는 것도 싫었지만, 그럴수록 더 사회에서 숨고 싶었다.


주변의 연락을 받을 때마다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 있으면서 아닌 척 거짓말하는 것도 이제 지쳤다. 만약 주변에 알린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밝혀야 할지 모르겠다. 또 쉽게 공감해 주거나 위로해 주기 힘든 상황인데 괜히 친구들 걱정시키기 싫었다.


그래서 모든 감정을 계속 꾹꾹 속으로 삼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괜찮은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혼이 끝나면, 모든 게 다 정리되면 그때 밝혀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한 친구의 문자 하나에 이미 내 마음은 다시 지난여름으로 돌아갔다.




모든 상황과 내 상태를 알고 있는 정신과 의사 친구에게 너무 힘들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가 스스로 조금 더 도망치고 숨을 시간을 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중에 알게 돼도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 왜 그렇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거라고. 그러면서 마음 회복 기간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내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한 번씩 이렇게 무너지면 더 힘들어. 이런 텀도 점점 길어지면서 희미해지나?”


“회복은 보통 바다 위에 파도가 계속 치는데, 파도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거나 파도에 휩쓸려도 금방 빠져나온다 이런 식으로 비유해. 방향의 문제야.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 낫는 방향으로. 좋아질 거야.”


친구의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이해를 해보려 애썼다. 그러니깐 나는 깊은 바다에 빠져서 심해로 가라앉은 상태이고, 적절한 치료를 통해 조금씩 해수면 위로 올라가는 거구나.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해수면 위로 고개를 쏙 내밀고 숨을 쉴 수 있게 됐으니 이제 다 나았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러나 깊은 바다에는 파도가 안 치지만 바다 위에는 파도가 친다. 큰 파도가 칠 수도 있고, 그 파도가 나를 다시 집어삼켜 물속으로 끌려들어 갈 수도 있다.

물속에 빠졌을 때 발버둥 칠수록 익사할 확률이 높아진다. 힘을 빼고 파도에 익숙해지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방향을 잃지 말자. 뭍으로 가야 하니깐.




아이러니하게도 서핑이 취미였던 남편은 인생을 파도에 비유했었다. 나는 남편을 따라 서핑을 딱 한번 해봤다. 남편을 만나기 전엔 물이 무서워서 수영도 못 했기에 나는 서핑보드 위에서 자꾸만 벌벌 떨었다.

남편이 그랬다. '내가 탈 만한 좋은 파도가 계속 안 올 수도 있다고. 그럼 좋은 파도가 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한다고. 서핑을 할 때 보드는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깐 네가 자꾸 무섭다고 보드를 쳐다보니깐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거라고. 적당한 파도를 기다리고, 그 파도를 잡은 뒤에는 앞만 보고 가라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좋은 파도가 오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그때는 연애 초반이라서 그런 멋있는 말을 해준 남편에게 더 홀딱 반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말은 서핑의 철학 같은 거라서 서퍼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말이었을 뿐. 어쨌든 물을 무서워했던 내게 수영을 가르쳐주고 서핑도 가르쳐준 남편은 정작 나를 심해 깊은 곳으로 빠트렸다. 내가 너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줬으니 너 스스로 알아서 살아 나와 봐라. 아니면 그대로 익사하든지. 그래서 나는 이 깊은 곳에서 스스로 살아나가야 한다. 나도 다시 바깥세상에서 숨 쉬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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