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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았던 6일간의 라이딩,
축배를 들다

1편. 대한민국 국토종주 _ Day 6.

by 이연미

Day 6. 남지읍에서 부산 99.4km


드디어 국토종주 마지막 날이다. 오늘 하루 100km 남짓 남은 거리만 달리면 종주의 종착지인 낙동강 하구둑에 도착한다. 출발할 때는 멀게만 느껴졌던 부산이 이제는 바로 코앞이라는 생각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마음이 들뜬다. 하루하루 달성 가능한 작은 목표들의 성취가 합해진 결과다. 오늘이 지나면 이렇게 뻥 뚫린 대자연도 이젠 안녕이겠구나 생각하니 마음 한 켠 아쉬움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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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중 만나게 되는 우리나라 국토의 아름다움


지난 6일간의 라이딩을 떠올리면 한 마디로 ‘행복했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다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도시의 안락함을 벗어나 자연 속에 깊숙이 들어가는 경험, 나의 육체적 노동으로 - 두 발과 하나의 심장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또 밟아 - 얻은 정직한 결실, 내 능력의 최대치까지 밀어붙이고 한계를 직면하고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 이 모든 것이 소중한 기억이다.




국토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길고 긴 자전거길에서 외롭지 않았던 것은 동행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딩을 함께 한 남편이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었다. 맞바람이 불 때면 그의 등 뒤에서 바람을 피하며 조금 편하게 달릴 수 있었고, 고비고비마다 그의 도움과 격려가 나를 계속 달리게 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목표를 가슴에 품고 달리던 사람들, 길에서 스치듯 만난 사람들도 큰 힘이 되었다. 우리의 루트와는 반대로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을 향해 달리던 라이더들은 지나가면서 가벼운 목례를 건네거나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자전거로 한국을 여행 중인 외국인들도 종종 보였다. 자전거에 커다란 안장 가방을 매달고 지도 앱을 내밀며 길을 묻는 여행객들을 만났을 때는 그들의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국적도, 사는 곳도, 연령대도 가지각색이지만 자전거라는 취미 하나로 동지애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자전거길이지만, 이 길을 이용하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논밭 사이의 시골길에서는 온갖 예상치 못한 동물이 출현했다. 길바닥을 점거한 사마귀나 도롱뇽은 기본이었고 어디선가는 먹이를 들고 황급히 길을 건너는 너구리 가족도 만났다. 갑작스러운 너구리의 등장에 나도 놀랐지만 너구리도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자전거를 보고 놀랐던 것 같다. 반쯤 일으킨 몸에 동그란 눈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는다. 마을을 지나갈 때면 마을 지킴이 개들이 짖어 댔다. 외부인을 경계하는 것이겠지만 내 마음대로 반가운 인사라고 해석하고 “안녕~” 인사를 건넸다. 가끔 떠돌이 개들은 마을 어귀까지 자전거를 쫓아 달려 나오기도 했다. 한 번은 앞서 달리던 남편이 길 한복판의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피해 가라고 손짓했다. 그 순간 ‘꿈틀’. 뱀이었다. 화들짝 놀라 핸들을 급하게 옆으로 꺾어 가까스로 피했는데 등에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차마 뒤를 돌아보지는 못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렸다. 여러 가지 의미로 동행이 있어 외롭지는 않았던 라이딩이었다.


라이딩을 함께 한 배경음악도 있었다. ‘나의 국토종주 OST’라고 마음대로 이름을 붙인 그 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Moana)>의 주제곡 ‘How Far I’ll Go’이다. 주인공 모아나가 끝없는 바다를 향해 항해를 시작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곡이다. 하늘과 만나는 지평선 너머 어딘가를 향해 끝 모를 길을 달리면서 나는 이 음악에서 힘을 얻었다. 노래의 가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See the line where the sky meets the sea? It calls me
And no one knows, how far it goes
If the wind in my sail on the sea stays behind me
One day I’ll know
How far I’ll go


낙동강을 따라 남쪽으로 뻗은 자전거길은 대체로 평탄했다. 지난 6일의 순간순간들을 떠올리며 다리로는 거의 기계적인 페달링을 하고 있을 때쯤, 현 위치 ‘부산’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감격에 겨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려서 일까, 부산시 입성 후 낙동강 하굿둑까지의 마지막 9km가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시내에 들어서자 신호등과 북적이는 사람들로 속도가 붙지 않아 거리가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때가 국토종주 중 시간이 가장 더디게 흘렀던 순간이었다.


‘6km 지점 통과’

‘이제 남은 거리 3km’

‘아, 마지막 1km’


체력도 정신력도 고갈되어 더 이상은 못 타겠다 싶을 때쯤, 국토종주의 종점 낙동강 하구둑에 도착했다. 나는 인증센터 앞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완주했다는 사실에 기뻐 날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덤덤했다. 어쩌면 날뛸 만큼의 기운이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이제 성취감을 만끽하며 축배를 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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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국토종주 완주! 축배를 들 시간~
IMG_20170504_173132_213.jpg Strava _ 남지읍에서 낙동강 하구둑까지 99.4km 라이딩

[자전거 타러 어디까지 가 봤니_ 1편. 대한민국 국토종주]

연재를 마칩니다.

곧 2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자전거 국토종주 7일 일정

1일 차: 마포 - 여주 107km

2일 차: 여주 - 수안보 92.5km

3일 차: 수안보 - 문경 53.9km

4일 차: 문경 - 칠곡군 102.9km

5일 차: 칠곡군 - 남지읍 107km

6일 차: 남지읍 - 부산 99.4km

7일 차: 마포 - 인천 40.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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