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11시.
아내가 두 아이와 외출을 했다. 곧 봄이 오면 첫째 딸을 출산할 처제와 장모님을 만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아침부터 모든 것을 놓고 쉬고 있다.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한없이 고요한 집안 거실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나의 집이 뿜어내는 고유의 선선한 기운과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주말이다.
가끔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한다. 결혼 후부터 아내는 나에게 주말을 선물로 내어주었다. 가끔은 하루 어떤 날은 이틀, 김장철에 사나흘. 그리고 그런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감사한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와인 한두 병을 고르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러다 글도 썼다.
나는 아내에게 그런 시간을 주지 못했다.
최근 들어 아이들이 커가고 육아의 부담에서 서서히 해방되던 그 무렵, 간혹 저녁에 학부모 모임을 간다거나 동네 언니들을 만나 커피 한잔하고 올 때 서너 시간이 전부였다. 가끔 홈쇼핑 채널에서 여행상품을 판매할 때 '나라도 보내줘'라 투정 부리듯 말할 때도 난 그게 그저 한번 해본 농담이라 생각했다. 나는 밖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고 집안에서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니, 나에게 휴식은 당연한 것이었고 아내에게 그러한 시간은 불요하다 여겼다. 집에서 아이들을 챙기고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며 집안일을 하는 것 모두,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가사'노동'임에도 나에겐 선이 있었다. 아내는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선.
그리고 나에게는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선.
아내와 함께한 십 년 동안 나는 아내의 이해를 바랐다.
나는 힘들 수 있고 그럴 때마다 주저앉을 수 있고 그래서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면 누구의 동의와는 상관없이 저 하늘 위로 손을 뻗어 원하는 것을 잡아내는 이기적인 행동에도, 아내의 동의와 인정이 꼭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해를 바랐다. 충분히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내게는,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도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그저 나를 위로해 주길 기대하는 이해를 바랐다. 그리고 아내는, 그것을 해냈다. 그리고 그 뒤에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아내의 걱정과 불안함에 대해서 나는 또 선을 그었다. 뭘 그리 걱정하냐고, 결국 다 잘될 건데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도 이해를 바라는 마음의 끝이 오늘 이 겨울의 끝자락에 매달려있다.
아내의 이해는 당연한 것이었고 쉴 곳이 없는 것이었다.
그게 우리 부부의 각자가 해내야 하는 역할 중 일부라고 여겼고 나쁘지 않게 이 시간들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의 감사함 뒤로 아내의 이해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스며들어있다. 혼자서 잘 챙겨 먹지 않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냉장고에 해둔 음식들을 알려준다.
집에 돌아올 때가 되니 좋아하는 떡을 사 온다고 연락을 준다. 줄을 서고 시간을 기다리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포장해 온다. 조금만 춥고 힘들면 아내가 좋아하는 라테 한잔을 사러 가는 것도 귀찮아했던 내가 이렇게 보잘것없이 생각된 적이 없었다. 보기 좋게 포장해서 아내의 희생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던 지난날이 후회되는 시간이다. 아내는 그저 나를 이해했다. 나의 부족함을 이해했고 나의 어려움들을 이해했다. 나의 고민과 고통을 이해했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나를, 자신이 반대하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를 이해했다. 10년의 세월 동안 사랑보다 이해가 우선이었다.
그랬던 아내에게 나의 이해는 어디에 머물렀을까
십 년을 더 살아보면, 이십 년을 살게 되면 그땐 아내에게도 필요했을 혼자만의 시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가끔은 모든 것을 그저 내버려 둔 채 비행기를 타고 아무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 곳에서 마음의 평온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해할 수 있게 될까. 당연한 것은 없다. 같은 사람이고 저마다의 기대와 희망을 안고 산다. 그것이 꼭 가족 모두를 아우르는 주제가 아닐 수 있다. 나의 인생이 소중한 것처럼,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의 아내의 인생 또한 소중하다. 이해는 마음의 쉴 곳이 되어준다. 그래서 때론, 이해한다는 한 마디로 마음이 내려앉기도 하는 것이다. 이해라는 작은 위로를 매 순간 보여준 아내의 인생이, 아내의 삶이 오늘보다 내일은 더 평안했으면 좋겠다. 늘 한발 늦게 깨닫는 남편은, 이제야 지난 시간 풀리지 않던 의문들의 해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밤, 아내가 내게 주었던 이해라는 선물이 지금까지 무엇을 지켜냈고 무엇을 이루어냈는지를 보게 되었다. 아내의 이해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순간들이 지극히 당연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가족을 품었던 것은 나의 역량이 아닌 아내의 이해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