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내와 청초호를 돌았다. 그런데 청초호가 화가 난 모양이다. 파도도 예사롭지 않고, 요트장 관리인도 나를 뭐라 나무란다. 마주치는 사람들도 눈길을 주지 않고, 수변에 노니는 여러 형색의 철새들도 나를 피하는 느낌이다.
내가 영랑호는 뻔질나게 다녀오고 알량한 글도 몇 번이나 쓰면서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화가 났을까? 세상에 이유 없는 이유도 있다지만 내 잘 다녀가지 않은 연유가 어찌 없겠는가? 사실 청초수 너에게 할 말이 조금 있단다.
너는 바닷가로 경계를 짓는 사주(모래더미)에 실향민들이 터를 잡고 마을이 된 이래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고 멋져졌지만 그 외로운 화려함 속에 불편함이 있다는 걸 잘 모르지?
그건 먼저 수변길이 온전하게 연결이 안 된 거야! 길은 호젓해도 좋고 북적거려도 상관없다. 그런데 조선소랑 뭔지 알 수 없는 몇몇 시설들에 가로막혀 수변길이 끊기고 호수와 한참 떨어진 우회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단다. 아바이 마을 쪽은 갯배를 타면 되지만 매번 신세 지기가 미안하고 설악대교 위를 험악하게 걷는 것도 산책길엔 생뚱맞다. 길은 연결이 존재 이유다. 2022년 초연결사회임에도 청초 호반길은 연결이 다 안 되는구나?
그다음은 청초호 주변에 드나드는 수많은 차량과 어선, 요트, 유람선, 바지선 등 온갖 문명의 이기들이 뱉어버린 소음과 매연, 수면에 드믄드믄 보이는 기름찌꺼기 흔적들을 보는 것이 화가 난다. 그리고 호수 서편을 제외하고 시멘트 칠갑을 하니 너의 본디와 순수함은 어디 있느냐? 수변 가까이로 터를 잡고 으라뻔쩍 거리며 고층건물이 하나씩 둘씩 들어서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조상들한테 물려받은 소중한 자산! 우리가 잘 쓰고 후손들에게 잘 물려줘야 되는데...
그럼에도 청초호는 곳곳에 사람들이 더불어 살며 부대끼는 흔적과 냄새가 넘치기에 많은 이들 찾고 너희가 사랑받는다는 거 잘 알고 있다.
그 제일은 철새와 연인들의 천국인 것 같다. 미시령에서 출발한 청초천이 호수와 합류하는 입구부터 바다 꿩, 큰고니, 노랑부리 저어새 같은 이름도 빛나는 수백여 마리의 철새들이 갈매기랑 뒤엉켜서 털을 고르고 물질을 하는 모습이 장관이며, 연인들이 청초 호수공원 이곳저곳을 누비며 추억을 남기기 바쁜 모습이 정겹다. 야간에는 더 바쁘고 뜨겁다.
건너편 청호동 수협위판장에선 경매 준비를 위해 바다에서 갓 잡아 온 싱싱한 생선이 내리는 선원들의 손길이 바쁘구나. 외국인 선원들도 자기 배의 매출이 잘 나오길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며, 중개인들은 손놀림이 분주하다. 낙찰된 생선들은 바로바로 중앙시장과 시내 곳곳의 식당으로 가서 손님을 기다린다. 요즘 빠지지 않는 단골은 가자미, 곰치, 도치다. 홍게도 드문드문, 고등어는 가끔씩 얼굴을 내민다.
속초항 쪽으로 나가는 길목! 갯배 타는 선착장엔 남녀노소 옹기종기 모이네. 배 건너 마을을 다녀오면 ‘가을동화’와 ‘1박2일’의 스토리는 바로 상기하겠지만 1.4 후퇴 이후 고향을 다시 찾지 못한 실향민들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겠다. 아바이 마을엔 좋은 식당도 많고 많다마는 단천식당으로만 모여드니 얄궂다. 그래도 그들은 갯배 탄 추억의 청초호를 기억하리.
청룡의 논갈이와 사랑을 기다리는 전설이 남아있는 늘푸른 청초호! 속초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고, 남녀노소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쉼터이며, 방문객들에게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주는 낭만 가득한 HOT PLACE라 할만하다. 조금 불편하다고 내 발길을 멈추지 않을진대 내 어찌 청초호를 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