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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연 Mar 08. 2023

나를 너로 고쳐 쓰는 밤 -필사의 계절

2020『애지』여름호 

겨울이 여름을 옮겨 적는 동안 

여름이 겨울을 옮겨 적는 동안 


나는 ‘너’를 옮겨 적으면서 나를 비껴간다 호수를 비껴간다 고양이를 비껴간다 골목을 비껴간다 


"벌써 일곱시구나*"라고 옮겨 적는, "벌써 일곱신데 아직도 저렇게 안개가 끼어 있다니*"라고 옮겨 적는, 그 여름엔 꽃이 지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매미가 울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다’ ‘해가 지고 있다’ 그러나 해는 이미 저물었으므로 나는 한때의 저녁에서 맥주를 마신다 라디오를 켠다 


- 너는 아직도 그 겨울이 언제 끝난 지도 모른 채 (얼어붙어있는 두 손으로) 눈 위에 눈을 눈 위에 눈을 쓰고 있을까?


수요일이 있었던, 햇빛이 있었던 자리에 앉아, 지나간 창밖을 다시 훑는 고양이의 눈빛처럼, 


떠오르지 않는 것을 떠올리며 네가 쓴 것을 읽는다 읽은 것을 쓴다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며 마지막을 쓰는 아침이다 나를 너로 고쳐보는 밤이다 여전히 너는 없는 오후다 


멀리 새가 운다 그런 날의 그런 바다에 앉아 울던 그런 날의 그런 새의 울음을 들으며 네가 쓰고 네가 쓴 구름을 이어 쓴다 겨우 눈을 감고 겨우 눈을 뜨면서 겨우 쓴 너의 얼굴로 너 없이 너의 겨울을 쓴다


구름 밑의 구름이 구름 밑의 구름과 얼어붙어 어디로도 흘러간 적 없는 구름이다 커져만 가는 구름이다


너로부터 시작된 구름이 

너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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