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은 후회하지 않는다
우연히 티비 채널 ‘아르테’인지 ‘클라시카’에서 알게 된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였습니다. 그가 베토벤 피아노곡만 친다는 정도만 알고 있던 차에 통영 국제음악당에서 2017년 9월 15일과 16일 이틀 간 피아노 연주회를 한다는 걸 알고 한 달 전에 예약을 해놨습니다. 아내는 서울의 병원 예약 날짜가 겹칠 것 같아서 혼자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병원 예약은 15일이 지난다는 걸 알고는 8일쯤에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서 아내의 예약을 했습니다. 따로 예약했으니 둘이서 떨어져서 들어도 할 수 없다는 심사였습니다.
15일은 아내는 진주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근무를 마친 저와 합류하여 5시 반에 사천에서 같이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상 저녁을 사 먹기도 어중간해서 일단 통영에 가서 해결하기로 하고 김밥을 준비했습니다. 한 시간 10분쯤 걸려 통영음악당에 도착하여 주차하고는 차 속에서 김밥을 먹으면서 둘이서 낄낄댔습니다. 우리가 무슨 피아노 리사이틀 매니아도 아닌 처지에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느낌도 들었던 탓이겠지요.
음악당에 올라가 사전 예약 코너에서 표를 받아들고서는 자지러지게 놀랐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한달 전에 예약한 표 F열 7번 바로 옆인 F열 8번을 저도 모르게 예약을 했던 것입니다. 둘이는 이게 천생연분이라는 거다 하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드디어 부흐빈더가 나타났습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사이클을 50회 이상 연주했다는 그는 말하자면 평생 베토벤만 파고들었다는 셈입니다. 그는 저보다 두 살이 위였습니다만 저보다 약간은 더 늙어 보였습니다. 흰머리에다가 피아노 의자에 앉으면 등의 흉추부가 동그랗게 휘어져 버려 있어서 얼마나 피아노를 들여다 보았으면 저랬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저것도 어쩌면 일종의 직업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두는 까맣고 양말은 자주색이며, 양복은 짙은 감색에 넥타이가 정장의 기본인 물방울 무늬 같았습니다. 와이셔츠는 하얗고 소매에 흰 와이셔츠에는 커프스 보턴이 잠겨있었습니다. 옆에서 보면 유독 매부리코만 뚜렷이 보였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곡’을 잡기 위해 건반 위에 부흐빈더의 손이 올라갔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그의 손은 조명 아래에서 붉은빛, 연한 노란빛 혹은 하얗게 보였습니다. 기름기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른 바람이 살살 분다고나 할까요. 그의 손은 천천히 움직이며 손가락이 거미의 발처럼 앞으로 나가기도 옆으로 걷기도 했습니다.
일어서는 가을 바람에 달빛이 스쳐 지나간다. 달빛이 스산하다. 지나간 세월의 회한이 소리도 흔적도 없이 지나가고 있다. 스스로 일어서다가 다시 쓰러진다. 또 나락(那落)이다. 자신을 위안하는 부드러운 음성이 스멀거린다. 달의 발걸음에 부딪치는 물결 소리, 회상하려고 하지 않아도 나타나서 환히 비춘다. 후회의 마음을 더 아래로 끌고 가는 낮은 음의 진동은 마침내 사라지고 없다. 저 깊은 바다 밑에서 물결이 몸을 흔들어 올리자 빗소리가 물결 을 밀어낸다. 눈물의 싹이 울음을 참는다. 후두기는 빗방울이 남긴 황혼의 적막이 걷는 걸 음이다. 한숨 소리는 바다 위의 반짝임에 녹아버렸다. 위로하는 크레셴도를 타고 올라가는 추억이 아련하다. 꺼져드는 불빛을 타고 올라가다가 다 놓아버린다. 달이 구름을 밟으면서 천천히 걷는다. 바람이 불어와서 먼산으로 흘러가는 눈앞이 흐려진다. 침묵하는 바다는 이미 침묵이 아니다. 눈물이 기진하여 쓰러지는 곳에서 파도가 가만히 밀려온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달의 얼굴이 창백하다. 자신의 몸을 시커멓게 파먹었던 어둠을 회상하는 월식의 한숨도 잦아든다. 하지만 바닷물 속 저 깊은 곳에서 조용히 끓는 빛이 올라온다. 맑은 종소리에는 이제 무게가 없다. 달은 바다에게 속삭였다, 이제는 파도를 가만히 치라고. 가물가물 꺼져가는 세월도 놓아버린다. 미끄러진 세월들에 얼핏 스치는 그림자도 이제는 따뜻하다.
다시 살아난다. 어린아이가 건반 위를 통통 튄다. 밝은 새소리가 들린다. 달빛도 명랑하게 달린다. 숨이 차서 멈추고 중천에 올라가서 멀리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천천히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스스로를 확인하고 조용히 잔잔한 파도가 된다. 통통 튀는 물수제비의 물결이 달이 달려가는 마음이다. 동심원으로 퍼져서 그대에게 닿고 싶다. 달은 갑자기 종종 걸음을 쳤다. 팡팡 산을 넘고 구름을 휘잡고 정신없이 달렸다. 모든 것을 잊고 싶은 그대에게서 빠져나가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 오는 세월의 청명을 위해서는 나를 흔들어야 한다. 해 가 지면서 남긴 희미한 빛을 밟고 가야한다.
지난날 헛디딘 세월의 후회는 마음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격정 끝에 건반을 내리쳤다. 떨리는 손이 어딘가를 휘젓고 다닌다. 끊임없이 방황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지쳤나 보다. 자신의 일생을 뒤집어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산 위에 올라가니 하늘이 가깝다. 조용히 돌아보니 허탈하다. 달빛이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온다. 고요한 명상으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달빛이 서서히 사라진다. 지나간 시간을 털고 불꽃으로 일어선다. 달은 구름과 바람을 저어서 앞으로 불쑥 나아갔다. 사라진 시간과 공간에 슬픔을 뿌릴 이유가 없다. 서산으로 달려 가는 어둠을 저어가야 한다. 열정에도 적막이 있었다. 달빛의 휘황함이 이제는 이념이 되어 버렸다. 단절의 설산이 이미 이념을 동결시켰다. 실체는 온 데 간 데 없고 달빛만이 뜨거운 피가 되어서 튀었다. 달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라고 부르면서 흘러간다. 산등성이 너머에 너의 본질이 있다. 수평선은 편안함을 내포하고 있다. 미동은 오류이다. 다시 종종 걸음으로 달리지만 이미 별은 없다. 위로의 바람은 이미 잠적했다. 구르고 구르고 구르고 나면 슬픔은 사라질 것이다. 바닷물이 맑다. 이제는 비틀거리던 길의 정상(頂上)에 왔다. 정 상은 죽음이다. 달이 본 마지막 음(音)은 절벽이다. 환한 그대 얼굴 마주하는,
세월이 녹아 흘러들어간 주름진 부흐빈더의 손가락은 희고 까만 건반들을 두들기고, 튀기고, 쓰다듬고, 만지고, 문지르고, 던지고, 지긋이 누르고, 건드리고, 간질이고, 훑고, 빨려 들어가고, 날으고, 슬쩍 건드리고, 울리고, 웃기고, 총총 걸음으로 걷고, 도미노 게임처럼 쓰러지고, 흔들고, 떨고, 음미하고, 찾고, 회상하고, 묻어버리고, 흩으러 버리고, 주무르고, 달래고, 급류에 휩쓸리고, 완류를 타고 흘러가고, 어쩌면 부끄러워하고, 때로는 흥분하여 마구 두들겨 패고, 실망하여 늘어지고, 물고기처럼 물살을 힘차게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부흐빈더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피아노를 잡아 희고 까만 뼈와 살을 발라냈습니다. 건반의 모든 결을 알아버린 그의 손은 다름 아닌 포정해우(庖丁解牛)*였습니다.
*포정해우(庖丁解牛): 『장자(莊子)』의 「양생주편(養生主篇)」에 나온다. 솜씨가 뛰어난 포정(庖丁)이 소의 뼈와 살을 발라낸다는 뜻으로, 기술이 매우 뛰어남을 비유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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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 노트
이 글은 저로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글의 완성도는 차치하고서 말입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문라이트’는 워낙 유명한 곡입니다. 3악장으로된 음악을 듣고 감상을 써낸다는 것이 지난할 것 같아서 ‘브레인 스토밍’ 기법을 활용해 보았습니다. 물론 ‘브레인 스토밍’은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에 기업에서 활용하는 활동이라고 합니다.
‘월광곡’ 세 개의 악장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 단어들을 무조건 그냥 적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재료들을 가지고 무작위로 연결시켜 문장을 완성하였습니다. 고쳐쓰기에서 그 중에서 흐름에 너무 튀는 문장들은 쳐내었습니다. 말이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그림이 그려진 부분도 있어서 저로서는 그런대로 만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