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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은 Feb 29. 2024

사랑과 세상, 그리고 그 안의 나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세상과 마주해 봅니다.

나는 끊임없이 세상과 대화를 통해

내 안의 문제들을

내 주위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해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 것도 존재했습니다.


진심으로 웃고 기뻐하고

진심으로 울고 슬퍼해도

진심으로 아프고 속상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해도

진심으로 용서하고 용서받아도

마음속 대지와 바다 밑 깊숙이 존재하는

허무의 어둠은

아무리 밝은 빛으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허무의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나는 나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지금껏 나는 세상을

마주 보며 살아왔습니다.

내 머리와 지식으로

내 감정과 경험들로

세상을 판단하고

속단하며 살아왔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다가도

조금이라도 내가 다칠 상황에서는

매우 방어적이고 감정적이 되어

나를 보호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실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고 소리쳤습니다.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해왔습니다.

또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했습니다.


지금껏 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척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인척 보이도록

살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 또한 깨달았습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의 자세는

열린 마음,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내가 지금껏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세상의 앞자리가 아닌

세상의 옆자리에 가서 앉아봅니다.

세상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당신의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전에는 결코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세상이 되고

당신이 되고

사랑이 되어봅니다.

그리고 다시 내가 되어

나를 바라봅니다.

내 마음 한 귀퉁이

떨고 있던 허무가 되어봅니다.

허무 속의 어둠을

느껴봅니다. 이해해 봅니다.

나의 허무가 되어봅니다.

그리고 안아줍니다.

괜찮다 속삭여줍니다.


손을 뻗어 허무의 검은 장막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다 대봅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검은 장막은

비눗방울처럼 터지며

온 세상이 환한 빛으로 물듭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고

슬프게 만들었던 허무는

하늘의 무지개가 되어

나를 향해 미소 짓습니다.


마음속 대지와 바다 위로

평온한 빛이 은은히 퍼져나감을

고요함 속에서 느껴봅니다.

잠들었던 생명들이

이슬을 머금고 고개를 들며

푸른 물살을 가르고 나아갑니다.

어머니 태양은 한결같이

따스한 손길로 모든 생명을

어루만져 주고 안아줍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손길을

만끽해 봅니다.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숨이 코를 타고 목을 지나

가슴에서 나뉘어

두 발과 팔 끝으로

퍼져나감을 느껴봅니다.

다시 천천히 깊게 숨을 내쉬며

숨이 배꼽밑에서부터

가슴을 지나 목을 타고

입안에서 입술 밖으로

흘러나감을 느껴봅니다.


내 몸과 마음 끝 언저리까지

산소로 가득 채우고

온전히 비워냅니다.

또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을

밝고 따뜻한 빛으로

충만히 채워봅니다.

그리고 이 순간의 완전함을

오감으로 고스란히 느껴봅니다.

마음속에 사랑의 자비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림을 느낍니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도 되어보고

당신도 되어보고

사랑도 되어보고

진정한 나도 되어봅니다.

마음속에는 무지개가 찬란히 피어나고

생명의 빛으로 가득 차오릅니다.

내 안은 세상과 당신과 나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 차오릅니다.





사진 - 이제은




나는 나 자신의 육신의 경험과 나 자신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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