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영화_시나리오
용어 설명
V.O.(보이스 오버) : 연기자나 해설자 등이 화면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대사나 해설 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디졸브 : 앞 장면이 서서히 사라지고 다른 장면이 서서히 나타나는것.
CUT TO(컷 투) : 시간경과
0. 오프닝
검은 화면에 자막이 나타난다.
“본 이야기는 역사 속의 사건과 인물들을 극적으로 각색한 것으로서 몇몇 장면들은 지극히 허구적인 추측과 요약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1. 실내/회의실/낮
작은 회의실. 진영(남/38세)이 초조함을 애써 숨긴 표정으로 긴 책상 끄트머리에 앉아있다. TV 뉴스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소식을 전하고, 진영의 낯빛이 어둡다. 그는 계속해서 자세를 고쳐앉고, 의자는 점점 더 삐걱거리는데…
진영
(중얼거리며 말을 연습한다.) K, K-pop will be popular in America……, no, it will attract attention all over the world……I guarantee it. (케, 케이팝은 미국에서 먹힐 것입니, 아니,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것입니다……장담합니다.)
외국인 비서
(문을 열고 들어오며) I'm sorry…He's busy. (죄송합니다. 바쁘셔서 못 오실 것 같네요.)
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유로운 제스처를 취한다.
진영
Well, I expected it (뭐, 예상했어요.)
외국인 비서
(살짝 놀라며) Really? (정말요?)
진영
No. (아뇨.)
진영은 억지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한다. 비서는 당황한 웃음을 내보인다.
그리고 들리는, 원더걸스 ‘So Hot’의 전주.
2. 방송자료 및 UCC 몽타주
계속해서 ‘So Hot’이 흐르며 원더걸스의 공연영상, 예능출연영상. 팬맞이현장 영상,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일반인들의 저화질 영상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등장하는 오프닝 타이틀, ‘투 더 원더’.
3. 실내/JYP 작업실/낮
방음부스 안, 한 가수가 ‘So Hot’과 상반되는 처진 분위기의 발라드를 부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방음부스 바깥의 진영과 시혁(남/37세), 심각한 표정이다. 허나 진영은 집중이 안 되는지 계속 한숨을 쉬고 몸을 배배꼬는데, 시혁은 그 모습이 신경 쓰여 힐끔거린다.
시혁
(가수의 노래가 끝나고) 어, 잘했는데, 한번만 더 가보자.
진영은 한 번 더 거칠게 한숨을 내쉰다. 시혁은 그 모습이 거슬린다.
시혁
권아, 조금만 쉬다하자.
시혁은 진영에게로 천천히 몸을 돌린다. 진영은 심각한 표정으로 의자에 파묻혀 앉아있다.
시혁
형, 솔직히 말할게.
진영은 시혁의 말을 못 들은 듯 빠르게 말을 내뱉는다.
진영
(진짜 궁금하다는 듯이) 운이 안 좋아도 이렇게 안 좋을 수가 있나? (등받이에서 몸을 떼며) 아니 그래도 다 될 것처럼 말해놓고! 계약해준다면서 갑자기 발 빼는 건 무슨 경우냐? 우리는 준비 다 해놨는데.
시혁
(타이르듯이) 나라가 망해가잖아. 어쩔 수 없지.
진영
내가 그걸 몰라? 그냥 그렇다는 거지…
진영은 토라져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시혁은 안경을 벗고 내려놓은 다음 팔짱을 끼며 진영을 지그시 바라본다.
시혁
형…미국 진출은 포기하자. 지금 있는 애들이라도 집중해야지.
시혁이 말하며 쳐다본 곳엔 원더걸스 포스터가 붙어있다. 진영은 더욱 풀이 죽는다.
진영
아니 지금까지 한 게 있는데…
한편 방음 부스 안 가수가 쉬라는 말을 듣지 않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시혁은 그를 가리키며 말한다.
시혁
(장난스럽게) 쟤네들처럼 또 나한테 떠넘기지 말고.
진영은 등받이에서 거칠게 몸을 뗀다.
진영
야, 그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하지만 시혁은 듣는 둥 마는 둥 버튼을 누르고 가수에게 말한다.
시혁
자, 다시 해보자.
녹음이 시작되자 진영도 말을 멈추고 가수를 보는데…애써 집중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시혁은 나가는 진영에게 전보다 높아진 톤으로 소리친다.
시혁
어디가!
허나 남은 건 문 닫는 소리 후 정적. 시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다시 디렉팅에 집중한다.
4. 실내/사무실/저녁
진영의 개인 사무실. 어두컴컴하다. 커튼은 다 올라가 있고 바깥의 인공 빛들이 조금씩 들어온다. 진영은 그러한 칙칙한 분위기에 동화된 듯 소파에 푹 주저앉아 TV를 시청한다. 그리고 하염없이 채널을 돌리다 원더걸스의 ‘Nobody’ 뮤직비디오가 나오자 멈춘다. 그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영상을 보는데, TV조명에 맞춰 그의 얼굴색이 변한다.
5. 실내외/차량 안, 고등학교 근처/오후
진영은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한다. 어딘가 모르게 서투르고 급한 모습이다.
진영
여기서 어떻게 가더라…
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진영은 조수석 위 핸드폰을 더듬거리며 찾는다.
진영
어, 소희야.
전화를 받은 그는 좀 전에 다급함을 애써 가라앉힌다.
소희 (V.O.)
아, 네. 오늘 직접 오세요?
앳되고 조금 수줍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진영
어, 거의 다 왔어.
진영의 말이 끝난 뒤 얼마 안 돼 학교 정문이 보인다. 그런데 웬일인지 수많은 학생들이 교문 앞에 모여있고, 진영은 당황한다. 갑자기 전화가 툭 끊기자 그는 더욱 당황하는데.
진영
(천천히 핸들을 돌리며) 뭐야?
교문에 가까워지자 차창을 뚫고 함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Nobody’ 떼창 소리와 이름 ‘안소희’를 제창하는 소리가 뒤섞인 것이다. 소리는 학교에 다가갈수록 더욱 커진다. 광기가 느껴질 정도다. 진영은 입을 벌리고 말을 잇지 못한다.
소희
다녀왔습니다!
진영이 당황한 사이 갑자기 차문이 열리고 교복을 입은 소희(여/17세)가 거의 점프하듯이 들어온다.
소희
(차분한 표정으로) 빨리 가요!
자동차 뒤쪽을 확인해보니 흥분한 학생들이 쫓아오고 있다.
진영
(어버버하며) 어, 어…
진영은 운전대를 꽉 부여잡고 차를 학교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학생들의 함성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린다. 백미러에도 광분한 얼굴들이 보이는데, 소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무표정으로 거울을 본다.
진영
허, 참.
더 이상 학생들이 없는 곳으로 차를 이동시키자 진영도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그리고 소희에게 말을 거려는 듯 쳐다보는데, 이미 그녀는 자고 있다. 이에 진영은 한 번 더 피식 웃고.
6. 실내/사무실/낮
진영의 사무실. 전보다 조금 밝아진 분위기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며 뭔가를 곰곰이 고민중인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진영
여보세요.
마케팅 매니저 (여/33세) (V.O.)
(흥분한 목소리로) 페레즈 힐튼 들어가보세요! 지금 당장이요!
진영
페리스 힐튼?
마케팅 매니저 (V.O.)
페레즈 힐튼이요, 페레즈!
진영
아…뭔데 그래?
마케팅 매니저 (V.O.)
빨리 켜보세요!
진영은 기대하는 표정으로 컴퓨터를 킨다. 그리고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자 미국의 연예블로그, ‘페레즈 힐튼’ 사이트가 나온다.
진영
(매우 놀란 얼굴로) 어?
진영이 들어간 사이트 메인 화면에 원더걸스의 뮤직비디오가 떠있다.
마케팅 매니저 (V.O.)
보셨어요?
진영의 놀란 얼굴이 점점 환호로 바뀐다.
진영
말도 안돼…진짜 말도 안돼!
마케팅 매니저 (V.O.)
말도 안 되긴 하는데, 진짜예요.
진영은 믿기지 않는 듯 경악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며 사이트를 둘러본다,
진영
여기에 진짜 우리 뮤비가 올라왔다고?
7. 실내/계단/저녁
진영이 신난 얼굴로 계단을 내려간다. 발걸음이 쾌활하고 재빠르다. 더불어 그는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진영
그러니까, 페레즈 힐튼이…우리나라로 치면 네이버 메인에 올라온 급이죠…
진영은 계속해서 발을 빠르게 움직인다.
8. 실내/연습실/저녁
안무 연습실. 원더걸스 멤버들이 누워있다. 화장기 없는 그들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있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리는데, 리더인 선예(여/20세)가 벌떡 일어나 준비동작을 하기 시작한다.
선예
(조금 힘없는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이제 해야지?
허나 그말에 곡소리는 더욱 커진다.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진영이 흥분한 얼굴로 들어오는데.
진영
빨리 모여봐!
멤버들은 깜짝 놀라 일어선다. 그리고 괜히 몸을 푸는 척 하는데, 진영은 딱히 신경 안 쓰는 눈치다.
진영
중요한 얘기야.
9. 실내/연습실/저녁
진영은 천천히 걸어다니며 말을 하고, 앞에 원더걸스 멤버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의 말을 경청한다.
진영
얘들아. 내가 연예계는 뭐와 같다고 했니?
그러자 선미(여/17세)가 순수한 얼굴로 되묻는다.
선미
글쎄요. 야생?
이에 소희가 피식 웃으면서 선미를 툭치고, 예은(여/20세)이 진지한 얼굴로 답한다.
예은
거친 물살이요.
진영
그래! 연예계는 거친 물살이야. 너희들은 떠내려갈래, 거슬러 올라갈래?
선예
올라가야죠.
진영
그지. 계속 도전해야겠지. 그러니까… (계속 뜸을 들이더니) 미국진출을 할까 하는데…너희들 생각은 어때?
원더걸스
(매우 놀라) 네?
진영
일단 너희들끼리 상의할 시간을 줄게.
진영은 놀란 얼굴들을 뒤로하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연습실 밖으로 나간다.
10. 실내/사무실/저녁
진영은 신난 얼굴로 약간씩 리듬을 타며 자신의 사무실 내부를 배회한다. 그러다 선예가 들어오자 그녀와 함께 자리에 앉는데.
진영
그래. 다 같이 얘기는 해봤어?
선예
네. 일단 저희들 답은 예스예요.
진영
(웃으며) 그래? 일단 오케이. 근데 분위기에 휩쓸려 억지로 승낙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선예
그렇죠.
진영
일단 너부터. 진짜 가고 싶은 거 맞아?
선예, 결연한 얼굴로 대답한다.
선예
네.
CUT TO:
선미
(조금 망설이지만) …네.
CUT TO:
예은
(자신있게) 네!
CUT TO:
소희
(무표정으로) 네.
CUT TO:
유빈 (여/21세)
(약간 웅얼거리듯이) 네.
진영
너네 진짜…
진영은 감동받은 듯 조금 울먹거리더니, 이내 활짝 웃는다. 이후 디졸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