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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H는 창문을 닫지 않았다

그녀의 후각이 불러낸 과거

비가 내리는 수요일 저녁,

그릇을 닦던 H는

복도에 스며든 담배 냄새를 문득 감지했다.


그녀는

축축한 공기 속에 섞인 그 냄새를

본능적으로 끌어당겨,

후각에 각인된 과거를 단숨에 끄집어냈다.


그 공기는,

거부할 틈도 없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손이 떨리던 H는

컵을 떨어뜨렸다.

파편은 왼쪽 발등의 혈관에 박혔다.


그 냄새는,

그의 체취가 아니었다.

그 체취는 좀더 오래된 기억의 일부였다.


H는 말없이

마른 발등을 내려다 보았다.

핏방울은 작았고,

가늘게 흘렀다.


그 핏방울은,

책 냄새가 밴 다락방 안,

오래 전 겨울의 한 장면처럼

숨을 죽이며 웅크리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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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그는

현관에서 잿빛 눈을 흘리며 서 있었다.

그의 담배 냄새는,

두 번째로 그녀의 피부를 자극했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닦으며,

그는 조용히 유리조각을 버렸다.

그날 저녁,

H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비가 다시 내렸다.

기억은 습기처럼 흘러들었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창문을 열어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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