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三淸洞)- 산(山), 물(水), 사람(人)이 맑아 삼청(三淸)이라 하는 바로 그 동네. 예전 같은 맑음이 이 동네에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독도서관으로부터 북쪽으로 삼청동 35번지를 향해 걷다 보면 남서쪽으로는 경복궁이, 서쪽으로는 인왕산이, 그리고 서북쪽으로는 백악산이 그림처럼 펼쳐지니, 여전히 풍광만큼은 하염없이 아름다운 동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거주지 삼청동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삼청로 주변의 상업구역만을 삼청동이라 인식하곤 하는데 그건 정확히 맞는 얘기는 아니다.
지도와 같이 삼청동은 삼청로 주변의 상업구역만이 아닌, 정독도서관 북쪽 35번지를 시작으로 북으로 넓게 뻗어 감사원을 지나 삼청공원까지 닿아있는 구역, 또한 그보다 더 북쪽의 넓은 숲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 여하튼 북촌 살림집으로의 이주를 준비 중인 내게 있어 삼청동이란 당연히 35번지 인근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 동네는 사실 대한제국(일제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진 일종의 신도시이다. 워낙은 대부분 임야이던 구역을 마치 요즘 도시를 개발하듯 토목공사를 하고 필지를 나누어 도시형 한옥을 지어 분양한 것. 그래서 '나름' 오래된 서울의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대지가 격자 모양으로 질서 정연하게 나뉘어 있는 모습이다.
한옥이라 하면 넓은 대지의 가장 깊숙한 공간에 안채와 안마당을 배치하고, 그 바깥쪽으로는 사랑채 등의 건물을 배치해 개인적인 공간을 조심스럽게 가려주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북촌은 신도시인 관계로 대부분 30-40평 정도의 좁은- 아파트의 대지지분이나 전용면적을 떠올려보자면 좁다고 말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대지에 집을 지어야 했다. 좁은 대지에서 과거와 같은 고전적인 배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된 북촌의 서울도시한옥은 안채와 작은 안마당, 그리고 사랑채를 필지 안에 압축적으로 배치하게 된다.
아쉬움이 있다면 삼청동의 주민 수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인데, 익선동과 같은 국적 불명의 상업 지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닌 이상(물론 그래서는 결코 안된다),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집도 도시도 그 공간에 살며 가꾸는 이들이 없으면 금세 시들고 마니까.
대한제국의 신도시였던 삼청동 35번지도 조만간 100살, 그러니까 상수(上壽)를 맞이한다. 이 소중한 북촌마저 잡화점이나 음식점 따위가 가득 찬 곳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그러니까 주민들이 웃고 떠들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진짜 동네"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어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RFID 등을 활용한 동네 재활용품 집하장 및 쓰레기장, 충분한 면수의 거주자 전용 주차장, 무인 카메라를 통한 골목 불법 주정차의 엄격한 단속, 공동 정화조의 설치나 하수로 직결, 전선의 전면 지중화, 단체 관광객 진입 제한 정도만 해도, 북촌을 주민이 살아있는 마을로 남게 하는 좋은 시작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