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면서는 여행 이야기를 적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전부터 아무렇게나 끼적거리던 여행 매거진이 하나 있기도 했었거니와, 자연스럽게 일 얘기를 꺼내기에도 좋았으니까. 무엇보다도 나는 정말이지 여행을 사랑한다. 마치 내 존재의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매달 여행 매거진 두 부와 항공사 기내지 한 부를 발행하는 회사에 다니다가 퇴사한 이후에는 줄곧 프리랜서로 일했다. 교육 유관 재단에서 배포하는 리플릿 원고를 쓰기도 했고, 어린이 독서 학원 동화 자료와 국가 자문위원회 중 한 곳이 펴내는 월간지를 교정 보기도 했다. 그럭저럭 살고 있구나, 싶었는데 프리랜서의 시작으로 치기에는 운이 좋다며 일하며 만난 분들이 응원해주셨다. 이렇게 2년 정도 버티다 보면 일이 차츰 느는 거라며....
운이 정말 좋았던 모양으로, 퇴사한 곳에서 일할 때 여러 번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분들이 따로 연락해오셨다.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걸 이미 알고 계셨지만 나랑 같이 하고 싶다 하셨다. 조금 과장하자면 사랑 고백을 받은 것보다 더 짜릿했다. 세상의 모든 을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역으로 전 직장에 일감을 의뢰하는 일이 생겼다.
연초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의 우여곡절 중 하나는 코로나였다. 첫 취재를 나간 날부터 서울 전역의 마스크가 동이 나버렸지 무언가. 함께하게 된 포토그래퍼와의 첫 만남은 마스크를 쓴 얼굴이었으며, 휴관한 박물관에는 따로 취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야 했다.
다른 건 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온라인에 배포되는 콘텐츠 댓글마다 '이 시국에' 타령이 붙는 것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취재 때는 막 코로나가 시작됐던 때로,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되었건만 콘텐츠가 풀리는 시점은 또 달랐다. 밥벌이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모순이라니....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왼쪽은 2018년 프로젝트, 오른쪽은 2020년 프로젝트. 그 많은 우여곡절을 다 겪었는데, 지나고 보니 다 추억이다.
프로젝트가 끝나자, 일을 의뢰했던 분이 사업자로 등록해보라고 권유해주셨다. 냉큼 등록하고 영업이란 것을 하기 위해 옛 거래처 연락처를 뒤지다 깨달았다. 여행 업계는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이 시국에'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 지금을 '방학'이라고 표현하며 출근하지 않거나 일을 줄인 이들에게 내가 일거리를 달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는 여행 이야기를 풀고 싶었으니, 그리하면 될 터였다. 코로나 시국에도 여행을 멈출 수는 없지. 그렇다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행이 뭐 별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매일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 수도 있는 것을. 이런 글을 찾아 헤매기로 했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될 줄 알고 기다리며 자주 여행 계획을 세웠다. 상상으로 여행하다가 진짜 좌충우돌 여행하는 이야기를 나란히 함께 놓으면 재미있을 듯했다. 물론 착각이었다. 언제 정말로 여행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여행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시야를 넓히는 방법을 늘어놓기로 했다. 한때 무기력에 빠졌던 내가 몸을 달구며 여행을 계획하던 방법들을 풀어놓고 싶었다. 이 시국에 딱 어울리는 여행책이라면 써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기분이 들떴다. 아, 물론 밥벌이는 잠깐 내려놓아야겠지만, 뭐 어떤가. 나는 아직 젊고 일할 시간은 충분하니 잠깐 여행하는 기분으로 쓰다 오면 되지.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운 곳. 선재도 뻘다방에서 바라본 목섬. (c) 2020. 아이후(ihoo) all rights reserved.
브런치북 표지 일러스트는, 위의 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제 친구인 'olocvoloc'의 작품입니다. 그 언젠가 우리의 일 얘기도 함께 끼적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