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십자가의 무거움*

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by 교회사이


대림절 두 번째 일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서 (8)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 . .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마태복음서 10:34, 38-39)


십자가를 지다 2.jpg photo by noneunshinboo


‘자기 십자가를 지라’ 하시는 그 때의 그 말씀은 오늘 여기 신학화되고 영성화되고, 관념화되고 추상화되어 이 때의 우리가 받아 듣는 말씀과 같지 않습니다. 쉽게 ‘아멘’ 할 수 있는 말씀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하기 좋고 듣기 좋은 영적 수사(修辭)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 때의 무겁고 조악하고 투박한 그래서 더욱 섬뜩한 그 십자가와 지금 이 때의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여기 십자가의 차이 만큼이나 같지 않습니다. 그 때의 그 십자가는 이 때의 우리가 조심스럽게 나의 입을 맞추는 십자가가 아니며, 될 수 있고 할 수만 있다면 멀찍이 떨어져야 할 흉측한 처형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물건입니다.


자기가 이제 곧 달려서 죽을 제 십자가를 정말로 지고 처형장으로 향하는 죄수의 모습이 너무도 흔한, 그래서 숨고 도망치고 그러다 결국 붙잡혀 그 길 밖에 더는 남은 것이 없어 반쯤 죽은 채 제 십자가를 지고 걷는 그 길은 그 때에는 상징도 은유도 비유도 아닌 실제로 걷는 길, 죽으러 가는 길입니다.

누구든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언제든 그 십자가를 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기에, 그 때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일상이어서 놀랍지 않고, 그래서 더욱 공포스럽고 두려운 살풍경(殺風景)입니다.


결국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나는 나의 십자가, 너는 너의 십자가를 지고 그렇게 함께 가자, 죽는 길을 함께 가자, 하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 몹시 무겁고 정말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 내 손에 잡히면 죽는다!”

친한 친구가 하면 우정이요 친근함이고, 연인이 하면 애정이요 애교지만, 정말 나 잡으러 달려오는 저기 로마병정의 살의가 가득한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건 정말 다른 얘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그리고 이후 70년에 있었던 유다전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십자가 처형이 있었음을 보고 듣고 겪어서 아는 그 때의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 말씀은, 그래서 그 일들을 지나간 역사로만 알고 있는 오늘 이 때의 우리가 듣는 말씀과는 그 결을 달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고 작아지는 것 같은 저의 존재에 힘겨워한 때도 있었습니다. 사는 일이, 믿는 일이 저에게는 다 쉽지 않아보여 끙끙거린 때도 있었습니다. 평화를 얻고 싶을 뿐이었는데 되레 ‘칼’이 박힌 듯 ‘불’이 붙은 듯 ‘분열’과 '분란'이 일어나 저의 속 시끄럽고 소란스러워진 때도 있었습니다.

평화를 주러 오신 줄로 알았는데 칼과 불과 분열을 주러 왔다 하신 말씀이 정말일 줄은 몰랐습니다. 나만 그런가? . . . 그건 모르겠습니다.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이 말씀이 주는 무거움, 그 무서움이 저에게는 오히려 반갑고 고마운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너무 작다 가볍다 했는데, 힘들었는데. 그런데 나는 결코 작지도 가볍지도 않다는 것을 십자가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더 커지고 훨씬 무거워진 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무거움과 십자가가 주는 무서움이 위로가 될 줄 몰랐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지금도 때론 힘에 겨워하고 그래서 헤매고 지치고 그만 숨고 싶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때 십자가의 그 무거움과 십자가를 지라는 그 말씀이 주는 그 무서움이 너무 무거워진 저를 가볍게 세워주고 지쳐 잠든 저를 깨웁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 11:28-30)


십자가 처형을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이 때를 사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정말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가 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정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십자가를 지다 3.jpg photo by noneunshinboo


십자가 생각 훌훌 어서 벗어버리고 훨훨 내 맘대로 날겠다 하는데, 그 십자가가 나를 나 훨씬 너머로 높고 멀리 날게 하는 그 날개 된다, 그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생각도 고민도, 그리고 함께 기도도 깊어가는 계절, 오시는 그 분을 기다립니다.



*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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