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포장마차의 붉은 천막 안으로 서늘한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김 씨가 내 빈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잔 끝에 아슬아슬하게 맺히는 표면장력처럼, 우리의 대화도 위태롭게 이어졌다.
“그 낭만이니 뭐니, 뚱딴지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나랑 사업이나 하자니까?”
나는 손 떨림을 타고 찰랑거리는 소주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싫어.”
“야, 너 내가 어떤 놈인지 몰라?”
한때 ‘전설의 김대리’라 불렸던 사내. 2000년대 영업판을 주름잡았던 그의 눈빛은 세월에 닳아 희미해졌지만, 술잔을 채우는 손길에는 여전히 묘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알지. ‘전설의 김대리’ 아니냐.”
“잘 아네! 물론 과거의 명성에 비해 요 며칠 비실댔지만, 나 아직 안 죽었다?”
“그래, 안 죽고 지금 내 앞에서 주정이나 부리고 있네.”
김 씨가 자세를 고쳐 앉는 틈을 타, 나는 젓가락으로 닭똥집을 집었다.
“너 진짜 세계여행 간다는 거, 진심이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얌마... 넌 진짜... 어휴. 언제 철들래?”
내가 많이 답답했는지, 김 씨는 제 잔을 채워 단숨에 비웠다.
“반백 살에 무슨 세계여행 타령이냐. 그런 건 스무 살짜리 애들이나 하는 거야.”
“……”
“그래. 뭐, 영 이해 못 하는 건 아니고...”
김 씨가 잔을 탁, 내려놓으며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 생활이 많이 힘들긴 했지. 우리 신입 때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막차 타고 퇴근했던 거 기억나냐?” “기억나지.”
“그때 우리 얼마나 개고생했냐. 나는 그러고 그만 뒀지만, 넌 수십 년을 했으니... 참 많이 괴로웠겠다.”
그의 말은 동정이었지만, 나는 그 동정이 필요 없었다. 맞다, 힘들었다. 하지만 그건 불행이 아니었다.
“나는 좋았는데?”
내 대답에 김 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장님, 부장님, 팀원들, 전부 다 좋았고, 난 꽤 만족했어.”
“그럼 왜 그만두고 떠나려는 건데?”
나는 비어있는 김 씨의 잔과 내 잔을 채웠다. 맑은 소주가 잔 두 개를 가득 메웠다.
“수십 년 동안 애벌레로 행복했으니까, 이제는 매미로 행복하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
“...미친놈.”
김 씨가 욕설을 뱉었다.
나는 그의 경멸과 세상의 모든 걱정을 향한 나의 마지막 대답인 양 잔을 높이 들고 외쳤다.
“저 넓은 세계를 향하여- 건배!”
“미친놈 맞네.”
김 씨의 욕설에는 아주 희미한 부러움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