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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Sep 23. 2023

달마중

바구니 달

바람의 소리를 들어 본 적 있나요?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배워서 음악으로 만들어 노래를 부르고 또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듣고 시를 씁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바람이 알려준 방법으로 커다란 보름달을 넣어도 충분한 바구니를 만듭니다.


백여 년 전 미국의 뉴욕 허드슨에서 멀지 않은 컬럼비아 카운티 산악지대에는 바구니를 만드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둥근 보름달을 ‘바구니 달’이라고 부릅니다. 달이 차오르는 동안 바구니를 만들고 보름달이 뜨면 바구니를 팔러 갑니다. 말도 마차도 없이 걸어서 도시로 바구니를 팔러 다니는 그들은 보름달이 환하게 비춰주어야 늦은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은 물푸레나무로 바구니를 짜는 사람들은 고산지대에서 가난하게 살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바람과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롭게 삽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바구니를 만드는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은 눈송이가 날리는 소리, 고드름이 녹아 흐르는 소리, 낙엽을 밀어내고 새싹이 돋아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지만 아직 나무들이 하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가 바구니를 팔러 가는 도시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아버지는 소년의 아홉 살 생일이 지나고 얼마 뒤 바구니를 팔러 함께 가자고 말합니다. 긴 장대에 주렁주렁 바구니를 달고 설레는 마음으로 허드슨에 도착한 소년은 수많은 거리와 상점이 있는 도시의 모든 풍경이 신기하고 새롭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던 길 “어이, 산골짝 촌뜨기들! 저 촌뜨기들은 바구니밖에 몰라!”하며 도시사람들이 놀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버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고 소년은 아버지가 왜 그동안 소년을 도시로 데려가지 않았는지 짐작합니다.

소년은 도시에 다녀온 후 바구니 만드는 일이 싫어졌습니다. 더 이상 허드슨에 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소년의 어머니와 이웃에 살던 조 아저씨는 소년에게  말합니다. “나무들은 우리 마음을 알 거야. 허드슨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쓸 것 없단다.”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배워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듣고 시를 쓴단다. 우린 바람의 말로 바구니 짜는 법을 배웠지.” 그때 바람에 밀려 참나무 이파리 하나가 날아왔습니다. 소년은 숲으로 달려갔고 바람의 소리와 나무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무들이 키우는 것이 소년이 만들 바구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년과 바구니 짜는 사람들은 모든 감각이 동물적으로 민감하고 섬세하여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의 냄새를 담은 작품을 만드는 공예가들이지요. 이렇게 바람의 소리를 듣고 예술을 탐닉하는 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바구니 달/ 바버러 쿠니 그림/ 메리 린 레이 글/ 이상희 옮김/ 베틀 북>

작가 바버라 쿠니는 191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100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그렸고 <달구지를 끌고>와 <챈트 클리어의 여우>로 두 번의 칼데콧상을 받았습니다. 또 <미스 럼피우스>는 뉴욕 타임스 ‘올해의 최고 그림책’에 선정되었습니다. <바구니 달>은 그녀가 2000년 3월에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작품으로 서정적이고 시적이며 세밀한 묘사가 독특합니다.


그녀의 그림책은 한 번만 읽고 덮는 책이 아닙니다. 적어도 세 번 이상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그림을 음미하고 이야기는 시를 읽듯 낭송하여 읽기를 권합니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나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들으며 읽어도 좋습니다.


 작가 메리 린 레이는 윈터서 박물관의 연구원으로 미국 수공예를 연구하고 바구니 만들기 역사에 관한 책을 편집하면서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번역한 이상희 작가는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인으로 시인답게 섬세한 필체로 이야기의 서정성을 잘 살려 번역하여 그림책의 예술성을 돋보이게 합니다. 번역에 따라 이야기의 분위기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면 이상희 작가의 번역은 탁월합니다.


세상은 빠르게 도시화되고 첨단화합니다. <바구니 달>은 이런 과학문명의 도시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공예와 장인들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성급하고 분주한 현대인들이 빠르고 편리한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 위해 포기하고 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합니다. 나는 기꺼이 자연을 느끼고 호흡하며 사는 촌뜨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얼마 전 슈퍼 문을 보기 위해 잠을 설치며 달마중을 나간 적이 있지요. 이제 곧 한가위가 다가오고 그러면 나는 또 달마중을 나갈 것입니다. 또롱또롱 걸음을 멈추게 하는 풀벌레 소리와 여름과 가을 사이 사뭇 달라진 바람의 온도를 느끼며 나무가 보름달과 이야기하는 것을 잘 듣고 시를 쓸 겁니다.

크고 탐스러운 보름달도 예쁘지만 나는 손톱처럼 얇은 조각달을 좋아합니다. 우리 동네에 뜬 초승달입니다^^

*자료 사진은 그림책 <바구니 달/베틀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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