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책은, 글은...
나 자신을 반추하게 하는, 한참 그 곳에서 나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글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눈과 손을 멈추고
하늘에서 잠시...
바닥에서 잠시...
허공에서 잠시...
그렇게 내 머리와 심장이
지금보다 더 높은 곳을 보고
지금보다 더 깊이를 들이고
지금에서 비껴갔던 옆까지 싸안게 하는 그런... 책.
책을 읽는 이유는 부족한 지식을 메우기 위함이겠지만 그 지식이라는 게 단순한 더하기빼기의 공식이나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를 쫒기 위한 새로운 이론을 습득하는 것을 너머 나의 현위치를 알게 하여 나를 점검하고 그 것조차 너머 내가 지식의 허영에 빠지지 않도록, 나아가 지금껏 지녀온 나의 인식이 나의 개념이 될 때 기형적인 형태를 띄지 않도록 나를 정돈시키는 것일테다.
이를 통해 내 정신에 조야한 지식들이 휘발되고
연신 움직여대는 내 손가락이 더 힘을 내야 하거나 없는 힘을 쥐어짜지 않더라도
내 속의 미세한 뉘앙스조차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활자로 드러내는,
그렇게 기품있는 글로 표현되길 바란다.
오늘 새벽, 나는 이렇게 나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기품있는 글들을 만났다. 이들은 위대한 학자도, 이름있는 명인도, 그렇다고 어떤 분야에 탁월한 능력자도, 또 작가로서 명성을 지녔거나 바라는 이들도 아니다. 그저 나처럼 책을 통해 자신의 '갈증'과 '갈구'를 글로 표현하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들이다.
방금 전 그녀들은 나의 스승이 되어, 나를 점검케했고 나를 더 새로운 나로 이끌었다. 그녀들이 지금 저렇게 자신을 알아가고 인간을 깨우치고 삶을 해석하며 그것을 글로 표현해내는 성장에 나는 가슴이 울렁인다.
갈망이 심했던 자신의 욕구와 현실의 부족을 놓아버리고 그저 천천히 자기 발이 닿는 아래와 자신의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과 자신속을 온기로 채워주는 빵으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세상은 바라보고 알아갈 것들로 꽉 차 있음'을 깨달아가는 단아한 그녀의 글.
나는 어떠한가.
나는 그녀를 따라했다.
한발짝 내디딜때마다 발바닥을 지긋이 누르며 마당을 걸어보니 내 욕구와 현실 사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던 조급함과 불안감, 갈증에 대한 부담감이 '괜찮다. 지금 네가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걷는 이유는 네가 의지를 가지고 지금처럼 묵묵히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야'라고 일러준다.
내게 온 불안정한 감정들이 날 걷게 하는 동력이 되는구나...
지금처럼 묵묵히...
읽고쓰고 읽고쓰고 읽고쓰고...
느끼고깨닫고 느끼고깨닫고 또... 느끼고깨닫고 ...
그렇게 가면 되는구나...
혼자만의 시간속 성찰과 자기극복이 없다면 제 아무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빛 속에 있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진리를, 매일 0(동그라미)를 치며 하루 1시간 독서, 100일을 채우겠다며 '읽어야 할 양서'를 묵묵히 손에서 놓치 않는 하얀얼굴의 그녀.
자신 또한 책 꽤나 읽은 책벌레인데 사고하는 인간은 없고 책벌레만 있다는 비판에 자신을 들여다봤다는 그녀. 책을 읽으며 지식의 습득과 감동에 그쳤던 자신이었는데 책에서의 배움에 실천을 주입하여 하나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소소한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이끄는 경이로움에 자기 삶에 무언가가 쌓여가는 느낌에 사로잡힌 그녀...
책벌레는 많은데 사고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에머슨(주1)의 호된 꾸지람에 내가 그랬듯 그녀도 고개를 숙였나보다. 그리고 자기 삶을 변화시키며 진솔하게 써내려간 글을 읽으며 지금의 나는 여전히 그리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묻고 또 물었다...
나는 바란다.
그리고 믿는다.
내가 책과 더불어, 펜과 더불어 춤추기를.
그렇게 무희의 옷을 입고
내 글이 무대위를 누비기를.
내 사유가 자유의 언어로 춤추기를.
내 글쓰는 행위가 입던 옷 모두 벗어 던지더라도 부끄럼없이 활자를 들이기를.
책을 읽을 때 나는 늘 내게 기대한다.
지금 이 책은
나의 무엇을 깨뜨리기 위해
나의 무엇을 깨우기 위해
또 나로부터 무엇을 창조시키기 위해 내게로 왔는가...
책은 매일 찾아오는 새로운 하루에 새로운 도취의 세계로 나를 이끈다.
감각이 열리고 그 문으로 진입한 어떤 이의 사유와 사상이 내게 착석하면
나는 그것이 떠나기 전에 냉큼 새로운 시야, 새로운 사유를 품으려는 의지로 나를 몰아가고
이어 나의 언어로 탄생하려는 의지를 품는다.
이내 의지에 도취되어 펜을 움직이며 나는 나의 이상(理想)을 바라본다.
하지만 금새,
날 자극시킨 도취가
자만이나 재주, 기술, 기능이 아니라
바라본 형상에 대한 강요된 서술이 아니라
인식속에서 표류하는 낡은 정신의 잔재가 아니라
또한, 감정의 향락이 아니라
자연을, 자연속 나를, 내 속의 웅크린 자아가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채비임을,
이런 나의 용기가 그저그런 움직임이 아니라 내 안의 힘의 고도와 성실, 충만의 표현이기를,
그렇게 내가 내 안의 나를, 내 삶이 나를 하나로 응축시켜 하나의 질서로 이끌고 가기를,
'내가 바라는 삶'이 내 손을 더 꼭 잡아주기를 나는 간절히간절히 바라고 믿어본다.
이상화(理想化)는 보통 믿는 것처럼 사소한 것, 부차적인 것을 떼어버리거나,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성들이 드러나도록 엄청나게 몰아대서 다른 것들은 사라져 버리게 하는 것(주2)이라는데
나는 다행히도 내게 침잠되어 있던 낡은 것들을 애써 떼어내려, 버리려, 덜어내려는 모든 욕구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그저 그것들과 함께 살며 그것들과 함께 바라본다. 새로운 하루는 새로운 감각을, 새로운 의지와 새로운 관조를 내게 선물하니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로 내 안의 '덜어내고 싶었던 낡은 것들'과 함께 새로움을 마중하면서 나는 그것들이 변화의 의지를 품은 것을 모든 감각으로 느끼고 있다.
내게 좋은 글이란...
이렇게 내 시선을 내 안으로 들이고
내 두 귀를 자연으로 열게 하고
내 벌어진 입술을 다물게 하여
들이고 담겨진 그것들이 내 손가락 위에서 춤추며 놀도록 나를 움직이게 하는 글이다.
어떤 유명한 철학자나 사상가, 학자도, 저명인사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이들이 쏟아내는 자기사유의 흔적이 묻어있는 진솔한 글을 대할 때...
그저 어제처럼 오늘을 사는, 자기속에 갇힌지도 모른채 허리춤에 팔꿈치 접어올린 태세가 아니라 두 눈에선 갈구의 빛이, 두 손에선 엉성하지만 진실의 향이 묻어 써내려간 글... 이런 글 속엔 하나의 작은 생명이 자신의 열매를 쫒는 초월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 버무러지며 뭉개지면서 드러나는 진정한 자아의 용맹과 투지가 들어 있고 그 공간을 메우는 치열함의 미숙하고 안타깝지만 위협스러울 정도의 작은 몸짓이 담겨 있다.
위대한 글이란...
자신의 위대함을 믿고 낡은 자신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위대한 인간의 발현이다.
인간의 위대함을 향해 빈곤한 자신을 채워가며 힘겹게 한걸음 걸어가는 위대한 인간의 도약이다.
자연의 위대함에 의지해 현재 자신을 완성형으로 즐기며 춤출 수 있는 위대한 인간의 본능적 몸짓이다.
이 지면을 통해 절 점검케 해주신 해보름, 마리솔 두 작가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주1> 자기신뢰철학, 랄프왈도에머슨, 동서문화사
주2> 우상의 황혼, 니체, 부북스